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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히면 돈으로 뚫는다”/정씨 로비·비자금조성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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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히면 돈으로 뚫는다”/정씨 로비·비자금조성 행태

입력
1997.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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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때 수표사용 곤욕이후 현금 선호/계열거래위장·노무비 뻥튀기수법 써/명절땐 수십억 인출 정·관·금융계 관리/직원 “거액 빼돌려 공장될리 있나” 원망검찰수사기록에서 드러난 정태수 총회장의 비자금조성과 로비수법은 부도덕한 기업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한보철강에 대출해 준 자금은 정총회장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고 「막히면 돈으로 뚫는다」는 정씨의 「로비관」은 항상 위력을 발휘했다.

정총회장이 본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시기는 한보철강의 당진제철소 공사가 본격화한 94년 무렵부터라고 한보직원들은 진술했다. 이전까지 수서사건으로 휘청거렸던 한보는 비자금을 조성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보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한보가 부도난 원인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인 정총회장의 현금인출과 재산빼돌리기 탓이었다고 진술했다. 한보그룹은 3억∼5억원은 부회장, 5억∼10억원은 회장, 그 이상의 고액은 정총회장의 결제가 있어야 인출할 수 있었다.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은 『접대가 있을 경우 총회장에게 접대계획을 보고하고 필요한 돈을 타와야 할 정도로 재정분야는 일전 한 푼 재량권이 없었다』며 『한보철강이 융자금을 고스란히 퍼부어도 제철소를 세우기 어려운 판에 거액을 빼돌렸으니 제철공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정총회장은 특히 현금을 좋아했다. 그는 검찰에서 『수서사건때 수표를 사용했다가 문제가 된 후 비자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뿌렸다』고 진술했다. 정총회장이 김종국 전 본부장이나 주규식 전무에게 명령을 내리면 직원들은 법인계좌에서 2억∼3억원씩 현금을 인출해 마대에 담아 정총회장의 조카인 정분순·정선희 자매에게 가져다 주었다. 현금 3억원을 옮기기 위해서는 회사직원 2명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

한보관계자들은 『정총회장에게서 10억원을 마련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돈을 구하기 위해 여러 은행지점의 돈을 긁어 모으며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며 『마대에 돈을 담아가는 모습을 보고 여직원들이 실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자금은 계열사간에 실제 금전거래를 한 것처럼 「뻥튀기」하는 수법으로 조성됐는데 노무비를 과다계상하거나 제철설비가격을 조작해 회계처리했다.

정총회장은 추석 등 명절때 수십억원대의 로비자금을 풀어 그룹차원에서 정·관·금융계 인사들을 관리했다. 정총회장이 지난해 추석과 연말 등에 떡값으로 계열사에 푼 돈만도 대략 84억원 가량인 것으로 드러났고 총선직전에는 무려 38억원이 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총회장은 은행 대출이 막히면 계열사 사장단을 동원해 로비를 했다. 실패하면 본인이 직접 홍인길 의원 등을 통해 「고공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보 홍태선 사장 등에 따르면 96년들어 한보는 현장사원의 임금과 보너스의 지급이 20∼30일씩 지연됐고 9월에는 전기료 7백억∼8백억원이 연체됐다. 지난해 추석무렵부터 급속히 악화한 한보의 재무상태는 11월부터 사채시장에서 초단기 자금을 끌어들여 간신히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 무렵에도 정총회장은 은행장과 정치인들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주며 은행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판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수사관계자를 놀라게 했다.<현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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