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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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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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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0년까지 앞으로 1,000일 정도 남았다. 2001년에 시작되는 21세기도 1,368일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각국은 또하나의 1000년 시대를 눈앞에 두고 이를 국가발전의 한 전환점으로 살려나가기 위해 갖가지 궁리를 하고 있다.영국과 프랑스는 2000년대 개막 기념조형물 건설을 놓고 자존심을 건 경쟁까지 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8월 150m의 회전놀이기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질세라 프랑스가 최근 거대한 시계를 조형화한 「르 크로노」(Le Chronos)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양국이 외형만 조금 다를뿐 똑같이 수레바퀴 모양의 회전기념물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양국 국민들이 서기 2000년의 의미를 보다 깊고 크게 하려는데 참뜻이 있다고 할 것이다.

사실 그럴만도 하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두 세기를 걸쳐 사는 것도 행운이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 우주시대를 활보하게 되는 오늘의 지구인들은 정말 행운아라고 할 만하다. 그것도 1000년이나 2000년처럼 새로운 1000년이 시작하는 해를 맞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지구란 별에 살을 붙이고 살다 간 인간은 대략 600억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중 이같은 행운을 맛본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이처럼 큰 행운의 순간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감사하고 준비하기는 커녕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허둥거리고만 있는 실정이다. 한보사태와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설로 나라가 흔들거리고 있다. 마치 이러한 혼란이 2000년대를 맞는 기념이라도 되는 것 같다.

대통령의 아들도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청문회에 세우는 일 자체도 어느 의미에선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일임엔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는 기념물이 될 수는 없다. 한 정권의 위기일 뿐이다.

현재 우리의 혼란은 전통 사회 및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나 지나친 탐미주의로 데카당스에 젖었던 19세기말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이러한 규범을 멀리하고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과소비로 흥청망청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그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러다 보니 나와 너의 관계, 즉 공동체 의식이 엷어지고 나와 나만의 관계가 전부인양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개인주의에 빠져 고립된 인간은 자유란 형속에서 답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오늘의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자연히 짜증이 나고 불안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런티어나 자극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30년동안 경제기적을 이룬 그 저력을 되살려 앞으로 남은 1,000일을 멋지게 설계해 실천에 옮기는 길 밖에 탈출구가 없다. 1,001일 밤을 계속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처럼 하루하루를 알차고 보람있게 살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일에서부터 이를 시작해야 한다. 신바트의 모험을 오늘에 살리려는 꿈을 갖는다고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2000년대는 우주시대라고 한다.

1,000일 설계속에 2000년 기념 조형물 건설을 포함시키면 어떨까. 광복 50년에도 기념 조형물 하나 만들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우리다. 이젠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과 같은 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하나쯤 가질 때도 됐다. 2000년 기념 조형물을 건설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새로 열리는 또하나의 1000년시대의 의미를 보다 크게 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이러한 1,000일 설계는 2000년을 맞는 행운을 보람으로 가득 채우는 역사적 작업이 될 것이 틀림없다. 서기 3000년을 맞게 되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1000년전의 선조들은 하나의 매듭이자 시작이라고 할 2000년을 국가발전의 한 디딤돌로 삼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꿈과 희망이 가득찬 「천일야화」를 엮어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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