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재일동포 만들기 최선”/참정권 획득운동 등 공존공생 모색/여러 지자체서 국적조항철폐 성과/흔들리는 조총련 포용대책 마련중/고국 동포들 애정갖고 지켜봐주길…21세기를 앞두고 70만 재일동포 사회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월이 지나고 여건이 변함에 따라 동포의 삶의 방식과 지향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동포 1세대가 항상 조국에로의 귀향을 꿈꾸었다면 새로운 주인공인 2·3세대는 일본이라는 삶의 터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주지향적」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려는 다양한 운동도 펼치고 있다.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뉜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민단 중앙단장에 재선된 신용상(72)씨를 만나 새로운 시대를 맞는 동포사회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민단 단장의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94년 중앙단장에 취임한 후 그동안 정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민단운동은 민족운동이며 또한 동포에 대한 봉사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열심히 하니까 동포들이 신뢰해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장 임기가 2000년 3월까지입니다. 세기를 이어가는 단장으로서 민단을 어떻게 이끌 생각입니까.
『우리 재일동포는 오랜 세월동안 갖은 차별을 무릅쓰며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의 민단은 동포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본인들과 공존공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민단이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지방참정권획득운동입니다. 94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일본인들로부터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본의 3,302개의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301개의 지자체 의회가 이 운동에 찬동하고 있습니다. 가와사키(천기)시 를 포함, 여러도시에서 공무원 채용시 국적조항을 철폐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공존공영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동포들도 법을 따르고 세금도 내는 등 나름대로 일본사회에 공헌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정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는 일본의 민주화와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지금 일본에는 과거의 잘못된 사상으로 회귀하려는 세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신단장을 흔히 「1.5세대」라고 부릅니다. 동포사회에서는 현재 「세대교체」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 10살때 가족이 모두 일본에 건너 왔습니다. 어려서 도일해서 그런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동포사회는 실질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3세대가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물론 1세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1세대와 같습니다. 민단은 민족교육과 동포사회의 종합연구기관 설치 등 이들 새로운 세대에 맞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단 집행부의 세대교체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일하는 자리의 인위적 세대교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워야지요. 저는 임기동안 단결력있고 깨끗한 조직으로서의 민단을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민단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우선 정신자세를 다시 한번 추스려야 할 것입니다. 50년을 넘긴 조직으로서 새로운 50년을 위한 성실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민단의 조직적인 재정개혁이 시급합니다. 또한 진정한 세대교체를 위한 인재양성에 최대한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동안은 인재양성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함께 조총련 동포까지도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는 포용력있는 민단이 되어야 합니다. 멀지않은 장래에 닥쳐올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 70만 동포사회의 화합과 통합을 위한 준비에 소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조총련 동포를 포용하는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돼 있습니까.
『황장엽 망명사건 이후 조총련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한 간부이외의 조총련 동포들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주체사상을 이론적, 전략적으로 체계화 시킨 인물의 망명은 조총련 동포들이 「북조선」을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총련계 조선대출신의 골수 공산주의자 간부는 힘들겠지만 그외의 조총련동포를 포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동포사회가 장래에 통합된다면 민단과 조총련의 통합이라는 조직과 조직의 결합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이 화합하는 형식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월드컵의 공동개최는 한일 양국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재일동포가 한일간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기회입니다. 88서울올림픽때 처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할 것입니다. 후원태세를 빨리 구축하겠습니다』
―단장 취임후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한신(판신)대지진 때였어요. 우리 동포가 130여명이나 숨지는 등 엄청난 재해였습니다. 그때 저는 왠지 일본사람들이 조선인을 학살했던 간토(관동)대지진이 떠올라 큰 일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긴급회의를 열고 재해 현장에 구호품을 보내라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동포들로부터 모금한 구호품이 속속 재해 현장에 도착했고 그날 밤부터 동포 청년회, 부인회 회원들이 분배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구호품보다 먼저 도착한 구호품을 일본 이재민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기억이기도 합니다』
―본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재일동포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교포와는 다르다는 것, 즉 재일동포의 특수성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징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사람들입니다. 가난도 커다란 이유였습니다. 이들은 일본사회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대부분 애국심이 강해서 모국에 무엇이든 기여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은행도 세우고 기업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국 동포들은 너무 냉정한 것 같습니다. 주민등록 등 제도상의 처리도 다른 나라의 동포와 똑같이 하고 있는 것도 섭섭한 점중의 하나입니다.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면 고맙겠습니다』<도쿄=김철훈 특파원>도쿄=김철훈>
□약력
▲1925년 경남 창녕 출생 ▲1935년 일본에 이주 ▲1954년 메이지(명치)대학 법학부 졸업 ▲1958년∼현재 마루젠(환선)기업(주) 대표 ▲1958∼1977년 민단 도치기현 지방본부 단장 ▲1971∼1973년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 ▲1971년 4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1976년 9월 〃 동백장 ▲1979∼1980년 민단 중앙본부 기획조정실장 ▲1979∼1985년 〃 집행위원 ▲1985∼1991년 〃 감찰위원장 ▲1985년 11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1991∼1994년 민단 중앙본부 의장 ▲1994∼현재 〃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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