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한 회원이 힘의 원천/가정 방문 활동 소개하는 ‘도어 투 도어’ 인상적/시위 치밀준비 효과 극대화『국내 시민단체는 단기간에 모든일을 해내려고 해요. 하루 아침에 될 일도 아닌데 성급하게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내 놓으려 하니 공신력이 떨어질 수 밖에요.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서야 나서는 뒷북치기도 많아요』
환경운동연합 회원관리팀 박현숙(32) 국장은 지난해 여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 미국본부에서 3개월간 인턴생활을 하며 효율적인 조직관리와 과학적 운영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문제점도 깨닫게 됐다.
조그만 보트 한척으로 거대한 포경선단이나 핵잠수함을 막고 시위를 벌이는 등 지구 곳곳의 환경파괴 현장에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내는 「그린피스」의 원동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범위한 회원 확보에서 비롯된 튼튼한 재정과 일사불란한 조직이 바로 그것. 그린피스는 세계 158개국에 500만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미국에만도 15개 지부, 150만여명의 회원이 있다.
그는 『미국 시민단체들이 직접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조직과 활동상을 소개한뒤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기부금을 받아 내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며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국내 시민단체도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한번쯤은 시도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미국 본부는 회비가 전체 예산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기부금과 티셔츠 달력 등의 판매이익으로 충당한다』고 설명했다.
환경련이 회원확보와 관리를 위해 올초 신설한 회원관리팀 일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그린피스 인턴생활을 통해 회원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은 공허한 거지요. 그만큼 회원확보와 효율적인 관리가 시민단체의 사활을 건 과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인턴기간중 그린피스의 반핵시위나 고래잡이 반대시위에도 참가했다. 시위방식도 되새겨 볼 만했다. 국내 시민단체의 시위는 피켓이나 플래카드가 전부인데 비해 그린피스는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면서도 시각효과와 홍보효과를 극대화했다.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포경 반대 기습시위에서는 보트가 동원됐는데 보트를 분해하지 않으면 시위자를 연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경찰이 시위자를 연행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단 한차례 시위를 하는데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적절한 시위방식을 개발,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환경련 전신으로 88년 창립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의 초기 멤버다. 89년 처음 공추련 활동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졸업후 마땅한 현장활동을 찾지 못해 이를 대신할 곳 정도로 생각하다 차츰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운동가로서 변신했다.
그는 『당시에는 자기 돈을 써가며 활동할 정도로 시민단체의 재정이나 조직은 열악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는 체계가 잡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중화와 전문성은 부족한 편』이라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국내 민간단체 1만여개/과반이 회원 500명 이하/‘종합사회운동’ 5% 불과
「시민의 신문」이 지난해말 민간단체 현황을 조사해 발간한 한국민간단체 총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민간단체는 3,898개로 지부조직 5,569개를 합쳐 총 9,467개에 이른다. 총람은 이들 외에 공개를 꺼리거나 조사를 거부한 단체도 3,000여개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설립연도가 명확한 3,200개 단체중 56%가 최근 10년 사이에 설립됐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23.7%였다. 이중 69%(지부 제외)는 서울에 근거를 두고 있었고 6.5%는 경기도를, 4.2%는 부산을 활동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87년 이후에는 청년 환경 인권 농어민 노동 빈민 문화예술 민족통일 등의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시민단체가 설립되었으나 복지 산업·경제관련 단체들은 큰 변화가 없었고 종교단체의 경우 80년대말부터 증가추세가 오히려 둔화되었다.
한국민간단체총람에 수록된 단체중 조사에 응한 1,578개 단체중에서 회원수 100명이하가 전체 25.7%였고 101∼500명이 32%, 501∼1,000명이 10.7%였다. 1,001∼1만명은 19.3%, 1만명이상은 12.3%, 10만명이 넘는 단체도 3.4%였고 50명이하는 13,5%였다. 또 상근자수는 2∼5명이 53.8%로 가장 많았고 1명인 경우가 15.4%, 101명 이상이 1.4%였다.
또 연간 예산은 1,000만∼1억원이 43.5%로 가장 많고 1억∼10억원이 33%, 1,000만원이하 9.5%였다. 10억원이상의 초대형단체도 14%로 이들은 주로 3차산업부문, 시민, 봉사, 보건의료, 복지부분 등에 집중됐다.
총람제작에 참가한 시민의 신문 부설 시민운동정보센터 노영란씨는 『전체 민간단체 중 종합적인 사회운동단체의 성격을 갖는 것은 5%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전문가 기고/박재창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시민운동은 ‘자유민주체제의 기초’/21세기 정부축소따라 공익 대행기구로 부상/새 운동전략 필요
시민운동은 시민의 자발적 판단과 참여에 따른 사적 영역의 활동이면서도 사회의 공적 이익을 겨냥한다. 바로 이 때문에 시민운동의 기초가 되는 시민정신은 자유민주체제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정치적 퇴영을 거듭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사회적 기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자유민주체제의 하부구조는 외부의 충격이나 타율적 노력에 의해서 성숙되지는 않는다. 오로지 시민 각자의 자기 성찰과 자발적 실천에 의해서만 성장한다. 그런점에서 시민의 자율적 판단과 의지에 의해 유지되는 시민운동은 자유민주체제의 사회적 기초를 건설하는데 유일무이한 대안이자 추동력이다.
그래서인지 사회주의 체제 몰락이후 체제 내부의 모순과 실패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동서양과 정치발전 정도에 관계없이 모두 시민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의 정치사회적 유행이 있다면 단연코 시민운동에 대한 재인식과 재평가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이 비정부 공익단체의 중요성에 착안하고 이들간의 연대와 협조를 통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해 보고자 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정보화 사회로 상징되는 21세기에 있어서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에 대한 요구와 함께 시민운동의 사회적 의의가 더욱 강조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유통 구조가 혁신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국가가 정보를 독점하거나 사회문제 해결 능력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실패를 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통해 시정해 보려던 산업사회적 문제 해결양식이 한계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부기능 축소와 함께 그 기능을 사회로 환원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사회로 돌리는 과제를 무조건 사회의 자율에 맡겨 둘 수만 없다. 그 경우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격화해 사회공동체는 해체과정을 밟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기능 축소에 따른 공익 관리업무의 대행기구가 필요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전환기 사회의 수요에 조응하는 최적의 대안이 시민운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은 지금까지와 같은 문화 계몽이나 사회문제 제기 및 고발 단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동전략에 눈떠야 한다. 정부의 역할을 대행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기 정체성 개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된 힘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압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대안을 구상해 집행해 나가는 일종의 대안운동을 싹틔워야 할 때다. 귀족주의 성향에서 벗어나 회원중심의 지역 및 현장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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