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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와 ‘에쿠우스’(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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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와 ‘에쿠우스’(연극평)

입력
1997.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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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성패,극의 성패극단 실험극장과 산울림. 각기 60년과 70년에 창단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극단이다. 97년 새 봄을 맞아 이 두 극단이 의미있는 두 공연을 마련했다. 즉 산울림은 우리 연극계의 영원한 스승이라 할 이해랑 선생의 8주기를 맞아 62년 그가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공연 중이고, 실험극장은 이해랑 선생의 다음 세대로 소극장 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동훈 대표의 1주기를 추모하며 75년 그가 열연한 바 있는 「에쿠우스」를 무대에 올렸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53년 별세한 유진 오닐이 41년에 집필해 놓았던 유작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소재로 한 자전적 희곡이다. 또 「에쿠우스」는 피터 셰퍼의 72년 작품인데, 75년 우리나라 초연시 최장기 공연·최다 관객 동원 등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즉 두 작품은 극작 시기로 보아 이해랑과 김동훈처럼 완전히 한 세대가 차이 나고, 따라서 양식도 판이하지만, 그 시차가 우리나라 초연에서는 10년으로 줄었고, 이번에는 동시에 공연되는 것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채윤일이 연출했는데, 노벨상 작가의 대작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이해랑 선생의 무게 때문인지, 거의 창조력을 발휘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 정평이 난 수준급 배우들이건만, 그저 근 세 시간에 이르는 공연을 무사히 넘기는 데 만족할 뿐, 진정한 예술가로서 역을 창조해내는 기쁨은 맛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에쿠우스」를 연출한 김아라는 작품을 충분히 장악하였고, 그래서 그의 장기라 할 「힘의 연극」을 꽤 흡족한 정도로 구사할 수 있었다. 특히 객석 정중앙을 관통하며 스스로 대칭을 이루는 무대가 인상적이었고, 그 거대하고 힘찬 무대에 달랑 회전의자 하나를 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시공간이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며 이어지는 극의 진행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김아라의 성공은 작품 양식에 힘입은 바 크다. 만약 「밤으로의 긴 여로」였다면 정동환(다이사트 역)의 시종 우는 듯한 번역투 대사로는 감동은 커녕 최소한의 재미조차 못끌어냈을 것이다.

결국 여기에 우리 연극의 현주소가 있다 하겠다. 어떤 양식이고 우리 연극이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통극이나 사실주의극은 원래 지루하다는 억지보다 과거 선배들의 번역을 보완하여 자연스럽고 간결한 우리말 번역을 얻도록 해야한다. 더불어 그 의미와 감정을 세밀히 분석하여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오세곤 가야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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