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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든 비리… 고개숙인 공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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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든 비리… 고개숙인 공복

입력
1997.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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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서 9급 공무원까지 수뢰·횡령사건 ‘꼬리에 꼬리’/떡값·상납관행 여전하고 게다가 공무원 4명중 1명은 ‘100만원 이상도 받겠다’는데…현정권 출범초 대대적인 사정작업으로 수그러 들었던 공무원 비리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월 이태형 수자원공사 사장이 골재채취업자로부터 2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서울 시의회 의원과 구청 공무원 등 6명이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건설공사 입찰예정가를 유출한 혐의로 무더기 구속됐다.

특히 최근의 한보사태는 공직자들이 상하를 불문하고 부패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김우석 내무장관이 한보특혜 대출과 관련,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되고 한이헌·이석채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대출압력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대형 공직비리사건과 함께 공무원 부정부패 사건도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2월에는 인청 서구청 도시국장이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아파트 사업승인을 해 준 혐의로 구속됐고 3월말에는 안산시장 비서실장이 농수산물시장 지정도매인 선정을 둘러싼 수뢰혐의로 구속됐다. 그밖에도 대구 남구청 공금횡령사건, 부산 수영구청의 위락시설 허가 관련 뇌물수수사건 등 일선 공무원들의 수뢰, 공금횡령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일선기관중 특히 비리가 심한 곳은 구청의 건축 위생 환경 교통 등 규제관련 부서와 세무, 소방, 경찰 분야. 올 설날을 전후한 서울시 자체 특별감찰 결과 11명의 구청공무원 비리가 적발됐다. 이들 대부분은 산업 세무 위생 건축 분야의 6, 7급 일선 공무원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무비리로 파면·해임·면직되거나 정직·감봉 등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53명에 달했다.

지방 일선 세무서 N과장은 『명절 때마다 「창구에서 떡값을 받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꼭 돈을 받다 암행감찰에 걸리는 직원이 나온다』며 『올해 들어서도 지방청 관내에서 금품수수로 징계를 받은 직원이 서넛 된다』고 말했다. 액수는 대개 10만∼50만원 정도지만 수백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경기지역 일선 세무서 K계장은 『80년대 초만해도 창구직원-계장-과장-세무서장으로 이어지는 「전자형」(받아먹는 입이 4개라는 뜻) 상납고리가 존재했지만 최근엔 일선계장이나 창구직원만 개입된 「일자」나 「구자」형 뇌물수수가 주를 이룬다』며 『세무비리는 특히 신흥상업지역이 많은 수도권 일대에서 심하다』고 말했다.

상납 및 촌지수수 관행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 대책위원회가 실시한 「공무원 부조리에 관한 의식조사」결과 응답자의 47.2%만이 민원처리에 대한 소액 사례금을 거절하겠다고 답했고 24.4%는 100만원 이상의 고액금품도 거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소액의 금품수수도 나쁘다」는 응답이 94년 85.5%, 95년 88.3% 에서 96년에는 72.3%로 오히려 줄어 들어 공직기강의 해이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96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민원인의 40%가 「급행료나 떡값 관행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고 민원인 100명중 4명 정도는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노골적으로 금품이나 향응 제공을 요구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도청 L계장은 『신속한 민원해결과 세금감면 등을 겨냥한 떡값명목의 금품이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 며 『사회전반의 비리구조 청산과 공무원 처우개선 등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배성규 기자>

◎어느 구의원이 본 지방공무원/자치단체장따라 편가르기 ‘알력’/측근들 요직 독차지 심각/‘물먹은’ 직원은 복지부동

『민선 구청장이 취임한 후 구청직원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 졌습니다. 선거때 구청장을 도왔던 「공신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고 덤벼드는 반면 「물먹은」직원들은 일없이 눈치나 보려고 합니다』

서울시 S구 의회 C의원은 지자제 실시 이후 공무원 사회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물론 민원부서의 서비스는 좋아졌지요.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공무원도 눈에 띄게 늘어 났고요. 그러나 최근 공무원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보다 더 뒤숭숭합니다』

그는 인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지방공무원 조직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단체장 선거이후 많은 자치단체가 끊임없이 인사후유증을 겪고 있다. 재무 교통 총무 등 핵심부서 요직은 단체장 측근들이 독차지한다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고 승진인사때는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알력이 빚어 진다. 또 도청공무원들이 자신의 출신지 시장·군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부러 기초단체 근무를 자원하는 「인사 역류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경기 군포시의 경우 지난해 시에서 징계처분을 받은 직원이 경기도로부터는 징계취소 처분을 받아냈다. 시장이 이를 수락하지 않아 처분을 둘러싸고 시청 공무원들이 양쪽으로 쪼개지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C의원은 차기 선거를 의식한 행정서비스의 확대가 혼선을 낳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과장이 할 일을 구청장이 하고 동사무소 업무를 구청에서 처리하는 등 공무원 조직의 생명인 업무체계가 파괴되고 있어요. 할 일이 없어 겉도는 하위 공무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날 수 밖에요』

구청 직원들의 근무태만과 비리유형도 다양하다. 『벌금이나 과태료를 잘못 부과하는 것은 예사이고 상급자가 지시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또 건축물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혹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서울시가 최근 시의회에 제출한 감사자료도 C의원의 지적대로 지자체 공무원의 근무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 준다. 자료에 따르면 민선시장 취임 이후인 95년 7월1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징계조치된 직원은 모두 600명. 이 가운데 검찰·경찰·감사원 등 외부사정기관에 191명이, 시청이나 구청의 자체감사반에 409명이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무사안일이 246명으로 가장 많았고 금품수수 113명, 법질서 위반 92명 등의 순이었다.

『요즘은 구청 공무원 중에도 대졸이상 고학력자가 많지만 대우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지방공무원 전체를 매도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공직은 봉사하는 자리 아닙니까?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역시 공무원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이상연 기자>

◎외국의 공무원사회/싱가포르­높은 급여 신분보장 철저 자긍심·비리는 개입의도만 있어도 처벌/뉴질랜드­‘행정혁명’통해 공무원 50% 축소·계약제 도입,실적따라 해고 가능

싱가포르는 공무원의 청렴도와 경쟁력이 가장 우수한 나라의 하나로 꼽힌다.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철퇴를 내리는 제도와 사회 분위기, 철저한 공무원 신분보장과 경제적 뒷받침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기명이든 무기명이든 공직자 비리에 관한 투서가 들어 오면 총리 직속의 부정부패조사국이 즉각 조사에 착수한다. 또 공무원이 부정에 개입한 경우는 물론이고 개입의도가 있었다는 것만 드러나도 처벌된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부정축재 몰수법」에 따라 공무원이 재산형성 과정을 소명하지 못하면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 재산을 추적·동결·몰수할 수 있다. 이런 제도 때문에 싱가포르 공무원은 업계 인사들과 골프를 쳐도 「그린피」를 자신이 낸다.

대신 급여 수준은 민간기업과 비슷해 금전적으로 별 부족함이 없다. 총리 월급은 10만 싱가포르달러(약 6,000만원)지만 이를 문제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심히, 청렴하게 일하는 만큼 그 정도의 봉급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인식이다. 그래서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긍지는 남다르다. 공무원이 가장 훌륭한 직업으로 꼽히고 우수한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공직사회 진출을 꿈꾸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혁명적인 정부조직 개편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나라다. 70년대초 유가폭등에서 비롯한 경기침체가 만성화, 80년대 들어 경제가 파산직전에 이르자 85년 정부기구와 인원을 대폭 축소하는 「행정혁명」을 단행했다. 효율이 떨어지는 부처와 기구는 통폐합하거나 민간에 넘겼다.

통상산업부 건설부 체신부 등 3개 부처가 과단위로 축소되고 13개 항구의 운영권을 쥐고 있던 항만청은 폐지돼 업무가 민간기업에 이양됐다. 그 결과 85년 8만5,000여명이던 공무원이 95년 4만여명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직원이 4,000명이었던 교통부에는 겨우 63명만이 남았다.

이와함께 인사제도 개편으로 총무처의 공무원 선발권이 각 부처에 이양돼 실적에 따라 공무원을 선발·해임하는 계약직 공무원제 도입 바람이 불었다. 중앙은행 총재가 통화운영 목표 등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해고당해도 좋다는 계약을 재무장관과 맺을 정도다.

자연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풍토는 사라졌고 각 분야의 경쟁력은 갈수록 높아졌다. 항만의 경우 생산성이 10년만에 30∼66%나 향상됐고 부두사용료는 크게 인하됐다. 뉴질랜드는 올해 스위스 경영연구원이 집계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세계 10위에 오르는 등 90년대 들어 늘 선두권에 들어가고 있다.<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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