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와 김현철씨의 국정농단의혹으로 국가가 결딴의 위기에 처한 이때 여야 영수들이 모처럼 한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를 갖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말의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통치권 누수현상이 급기야는 국정의 표류상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 자리가 현재와 같은 심각한 누수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자리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오늘과 같은 이 지경의 사태가 왜 도래했는가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제의를 김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열리게 되는 외관만큼이나 이번 회담의 성격은 자명하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당장 현재와 같은 위급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곤일척의 승부수나, 무슨 뾰족한 해결책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만남」 자체에 의의를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우리는 이번 회담이 여권의 국정운영 난맥상으로 인해 상처받은 국민감정을 어우르고 흩어진 민심을 한데 모아 다시 국가발전의 동력화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지금은 김대통령의 도덕성 훼손으로 지도력이 크게 도전받고 있는 취약한 시점이다. 이는 통상적인 임기말의 레임 덕차원이 아니다. 김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이 아무리 통치권을 강조한다고 해도 현재의 시국을 정면돌파하기가 어려운 시점이다. 한보비리나 차남 현철씨의 국정농단의혹이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이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정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정운영의 총체적 부실상을 노출한 여권과 국정운영의 한축이자 대체세력이라 할 수 있는 야권 책임자들이 시국을 풀기위해 모였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 또한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와 같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여야간의 「협조적인 시국관리」가 필수적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까지 당리당략이나 대권을 향한 이기심을 내세우려 할 때 이번회담은 안하니만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파국상태의 경제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할때 회담의 이니셔티브를 빼앗겼다고 해서 뜬금없이 내각제수용을 들고 나온다든지 하면 회담은 하나 마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김대통령이 분명한 자기입장을 밝히는 일이다. 현재 한보비리와 현철씨의 국정농단의혹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중이다. 유감스럽게도 재수사마저 초점에 접근하지 못한채 주변만 맴돌고 있는 인상이다. 성역없고 한점 숨김없는 조사나 수사가 이루어져 이 난국의 매듭이 풀어질 수 있도록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야당 총재들도 마찬가지다. 국정운영 동반자로서의 무한책임을 표시해야 한다. 오늘의 국정난맥상 원인이 여당의 독주탓으로만 몰아세우기는 어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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