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유혹 떨쳐주는 구명의 예술혼 담겨/태종대 투신자살 막으려 75년 부산시 의뢰·제작/“실제로 투신자 크게 줄어 놀랍고 자랑스러워”부산 태종대의 벼랑끝의 「자살바위」는 이젠 이름으로만 그 유래를 전하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높이 80m의 수직절벽과 시퍼런 바다는 세상을 등지려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유혹을 떨치기 힘든 곳이었다.
실제로 여기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사람이 한 해 평균 30여명이나 됐다. 해마다 자살자가 늘자 영도구청과 영도구민이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먼저 「구명사」라는 절을 세워 불심에 호소했지만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막지는 못했다.
75년 부산시가 대책회의를 열었다. 환경미화위원으로 이 회의에 참석했던 나상기 홍익대 교수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전망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어머니가 아기들을 안고 있는 「모자상」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즉각 실행에 옮겨졌다. 모자상조각가는 국전추천작가를 지낸 전뢰진 홍익대 교수가 선정됐다. 영도구청은 사업비 3,480만원을 들여 전망대건설에 나섰고 구민들은 자체적으로 조각건립자금 320만원을 모금했다.
『모자상제작의 배경설명과 의뢰요청을 받고 기념상조각과는 또 다른 의무감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처음에는 조각을 세운다고 자살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전뢰진(68)씨는 21년전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되살리며 「모자상」을 대표작으로 추천한다. 당시 작업실이 따로 없었던 그는 서울 신림동 집에서 조교(유영교씨)와 함께 돌을 쪼았다. 한겨울이라 실외에서 작업하기 어려워 거실마루를 뜯어내고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후 석달동안 돌먼지와 소음에 시달린 끝에 「모자상」을 완성했다. 가로 180㎝, 세로 150㎝, 높이 210㎝의 역작은 한복차림의 어머니가 남매를 보듬어 안고 있는 형상. 태종대공원 남단순환도로변에 건립된 163평의 전망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조각이 들어서자 신기하게도 투신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찾아왔다가 참회하고 영도경찰서 등에서 여비를 얻어 돌아가거나 일자리를 부탁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모자상이 투신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만들어 발길을 되돌리게 한 것이다. 모자상이 들어서면서 구명사는 서쪽으로 1㎞쯤 옮겨갔다.
전씨는 『조각 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매우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가 한국전쟁 중에 홍익대 조각과로 편입한 전씨는 재학시절 대한미술협회전에서 「소녀상」(미 국무부 소장)이 입선된 이후 「풍경조각」과 「흔들리는 조각」 등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하며 「돌조각 외길」을 걸어왔다. 94년 홍익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그는 내년 칠순에 맞춰 개인전을 열기 위해 요즘도 신림동 자택 지하실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돌을 다듬고 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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