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부터 극비리 진행·서류도 안남겨/시베리아 가스전 연결 장기계획까지일명 「NK(North Korea)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한보그룹의 황해제철소 경영참여사업은 한보가 정부측 일부 인사들과의 교감하에 95년부터 극비리에 진행해왔다.
사업내용은 한보그룹이 황해북도 송림시에 있는 황해제철소에 총 5백30만달러를 투자하고 이의 대가로 선철(쇳물)을 수입하는 한편 경영권에도 참여한다는 것. 황해제철소는 1914년 일본이 북한에 세운 최초의 제철소로 광량만제철소가 본래 명칭이다. 이 제철소는 시설이 노후화한데다 북한측의 경제난으로 최근에는 가동이 중단돼 자금투입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보측은 정태수 총회장이 95년부터 정부 고위관계자의 요청을 받은뒤 이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관계자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H씨가 거론되고 있으나 H씨는 『한보의 대북사업은 전혀 알지 못하고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한보그룹 관계자는 『정총회장은 95년만 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대북사업을 꺼렸으나 96년초 정부측 인사를 다시 접촉하면서 대북사업을 급진전시켰다』고 말했다.
한보는 이때부터 대북사업을 위해 싱가포르에 (주)한보의 현지법인을 설립, 대북창구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이 법인의 실질적 책임자는 현재 구속중인 당시 재정본부장 김종국씨로, 정총회장―정한근씨의 직접 지시하에 대북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정씨 일가를 비롯해 김사장과 현지법인 관계자 일부만 아는 상태에서 극비리에 진행돼 서류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는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통일원 안기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도 하지 않은채 96년중반께 중국에서 북한측과 계약을 체결했다. 한보측에서는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통해 정한근씨가 직접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든 업무는 중국 헤이룽장(흑룡강) 민족개발공사가 대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계약에 따라 한보측은 싱가포르법인을 통해 지난해 9월 민족개발공사에 1차로 선철매입대금 3백30만달러를 지불했다.
이 대금은 한보가 지난해 베네수엘라 철광석가공공장에 투자하려 했던 자금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2차대금 2백만달러는 경영권 참여대가로 4월께 북한측에 전달할 예정이었다. 한보는 이 대금도 필리핀 댐공사 대금에서 충당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는 이번 황해제철소 경영참여사업에 이어 시베리아에 건설한 가스전에도 북한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 전력난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장기계획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그룹 관계자는 『이 계획도 정부측 인사와의 합의하에 마련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보의 이같은 대북사업은 한보가 부도난 1월부터 중단됐다. 부도직후부터 한보측은 이미 투자된 3백30만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민족개발공사와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보측은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북사업 은폐를 위한 대책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1월 중순께 작성한 이 대책문건은 크게 3가지 안으로 구성됐는데 사건의 추이에 따라 ▲북한 진출사실 부인 ▲선철매입자금 투입 발표 ▲경영참여계획 발표로 국민동정 유발 등 다양한 대응방안을 담고 있다.<선년규 기자>선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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