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정형근 의원이 27일 『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이 한국에 왔을 때 국내의 친북세력, 즉 「황장엽 리스트」가 나올 수 있다』고 한 발언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황장엽이 베이징(북경)에 있을 때 국내 일부 언론이 이에 관한 설들을 보도한바 있다고는 해도 그때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같은 사실이 여당의원의 입을 통해 회의에서 공개됐다는데 있다.익히 아는바대로 정의원은 과거 우리 대공수사를 사실상 총지휘했던 안기부의 대공수사 실무총책(대공 수사차장보)이었다. 그의 입에서 소위 「황장엽 리스트」가 언급됐다는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은 아니다. 정의원은 또 『이는 내용에 따라 엄청난 잠재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이 「리스트」가 나오게 되면 현재의 국면은 완전히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석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매우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체제속에 깊숙이 잠입해 있다는 친북세력에 대해 철저한 발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실한 근거밑에서, 조용히 수행되어야 할 일이다. 하물며 그일로 「국면전환」이니 「공안정국」이니 하는 말이 따르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현재까지 황장엽 리스트의 존재여부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어느 당국자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황비서는 아직까지 필리핀에 체류, 망명이 완성된 상태도 아니다. 이처럼 불확실요인이 많은 상황속에서 전직 대공수사 실무책임자의 입을 통해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 정세분석위원장의 자격으로, 자기당 소속의원과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비공개로 한 「정세분석보고」였다고는 해도 그의 이같은 언급이 공개됐을 때 예상되는 엄청난 파장에 대해 어떤 고려가 있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정의원 자신은 그 내용이 공개된 이상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여기서 우려하게 되는 또다른 점은 그도 연찬회석상에서 지적한대로 국가안보상황의 정치적 목적의 이용이다. 정의원은 『그렇다고 이(황장엽 리스트)를 정치적 카드로 이용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지적은 백번 옳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안보 정치카드화의 역기능을 지적한 정의원이 스스로 이를 어기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그 보고가 「비공개」조건의 자리에서 한 일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특히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290여명 등 수백명이 경청한 자리였고, 정치적인 집회였기에 이것이 비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퍽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정의원의 말대로 황장엽 리스트가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정의원이 직무와 관련해 취득한 사실을 공개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신중한 문제일수록 신중한 접근이 요청된다. 「체제내의 북한 연계세력」이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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