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개성은 잠시 접어둔채 ‘상업성은 곧 예술성 부족’ 확인2년전 박재호 감독은 저예산독립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 90년 자신의 데뷔작 「자유부인」에서 보였던 한국영화의 상투성을 버렸다. 「가족해체」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는 도전적인 대안(동성애)으로 접근했고, 그것을 한국적 유머, 공간(사각구도)과 선(수평선과 원)으로 담아내 놀라게 했다.
그런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잠시 보류하고 만든 작품이 4월5일 개봉될 「쁘아종」(독한 향수의 이름으로 독약이라는 뜻)이다. 「쁘아종」은 서울의 뒷골목을 부유하는 젊은이들이 선택한 사랑을 상징한다. 도시의 메마름과 폭력성을 딛고 얻어낼 향기를 위해 「타락천사」인 정일(박신양)과 서린(이수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뒤틀린 형사 영수(이경영)는 두 주인공이 「타락」이 아니라 「천사」라는 사실을 반증하기 위해 존재한다.
영화는 처음 세 사람의 현재와 내면을 별개의 얘기로 풀어간다. 독백형식으로 그려지는 정일의 순수함과 그것이 도시에서 여지없이 패배하는 모습은 우울하다. 서린은 몸 팔고 사기치고 훔치고 알코올에 절어 살면서 악만 남았지만, 언젠가는 감춰둔 순수에 취하리란 예감을 준다. 그것은 그가 바로 영수의 가학적 성행위와 집착의 대상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확실해진다.
그리고 운명처럼 우연히 정일과 서린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영수의 집요한 추격이 시작된다. 영화는 중간에 마약제조단 급습사건과 서린의 마약 빼돌리기를 넣어 위기감을 높였지만 기본적으로 끝까지 비천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고 애틋한 둘의 사랑이 설 곳이 없다고 반복한다.
영화는 타락한 도시, 세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지구를 세탁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만 살자』 『별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말들을 남기고, 마지막 정일과 서린 단 둘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나보낸다.
박재호 감독은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의 빛바랜 창호지 같은 누런 색 대신 느와르의 전형이 돼버린 블루 톤으로 영화를 채색했다. 현재, 서울이란 무대에서는 당연한 선택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기대했던 감독의 목소리이다.
독창성은 약하지만 전반부에 짜임새를 보였던 인물의 서술구조는 그들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흐트러지고, 같은 언어와 형식으로 「사랑과 순수」의 강조만 잦은 섹스장면과 함께 지루하게 반복된다. 이것이 흥행을 의식한 의도적인 것이라면 한국영화는 「상업성은 곧 예술성, 독창성 상실」이란 이상한 공식에 얽매여 있다는 말도 된다.<이대현 기자>이대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