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대 대선 도와 ‘정치적 동지’로 발전박태중씨는 야권이 「현철씨의 재산관리인」, 여권이 「현철씨의 분신」이라고 말할 만큼 현철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박씨 스스로도 『매주 1∼2차례 현철이를 만난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 박씨는 현철씨의 서울 종로구 중학동 미진빌딩 개인사무실 운영경비와 직원월급을 제공했다. 박씨는 현철씨 대신 약속장소에 나가는 등 「비서실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익히 알려진대로 중대부국, 중대부중 동기동창의 절친한 친구사이다. 박씨는 어린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마음대로 출입했고 사석에서는 김대통령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다. 두 사람은 87년 13대 대통령선거때 박씨가 현철씨를 도와 선거운동에 뛰어들면서 「정치적 동지」로 발전했다. 92년 14대 대선을 치르면서 둘은 더욱 가까워졌다. 박씨는 당시 불과 33세의 나이로 YS의 최대 사조직이었던 나라사랑운동실천본부(나사본)의 총괄사무국장을 맡아 수백억원대의 자금관리를 도맡아 처리했다. 한 여권인사는 24일 『당시 박씨는 나사본에 참여한 현역 의원들에게조차 자금지출내역서 제출을 요구할 만큼 파워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선이 끝난 뒤 박씨는 표면적으로는 정치활동에서 벗어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주)심우, 의류업체 파라오, 빨래방체인점 탑빨래방, (주)두일, (주)우보전자, (주)우보스페이스, (주)한국DM, (주)로토텍인터내셔널 등이 그가 설립하거나 투자한 회사다. 그러나 박씨 주장대로 사업실적은 변변치 않았으며 박씨의 활동은 여전히 현철씨의 「집사장」 역할에 가까웠다. 현철씨를 둘러싼 해외유학 논란, 야당의원들에 대한 법적 대응문제 등은 물론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 출석문제, 대국민사과문 발표 등에 이르기까지 그는 핵심 참모역할을 했다. 23일 박씨 집에서 발견된 「국조특위 증인채택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이 두 사람의 관계를 뒷받침한다.<이동국 기자>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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