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공통어’ 노래를 무기로 세계 1억명의 눈과 귀를 모으는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MTV/현란한 화면과 음악이 결합한 뒤죽박죽의 세기말적 이미지는 영화로 CF로 TV로 재생산돼/어느덧 우리시대 대중문화를 규정하는 ‘공룡’으로 성장했다81년 케이블 채널의 하나로 MTV가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했을 때, 음악비디오만을 트는 「이상한」 방송이 오늘날 같은 위력을 가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MTV는 세계 다섯군데에 지사를 거느리고 1억에 가까운 세계인의 눈과 귀를 끌어모으는 국제적인 방송으로 거대하게 성장했다.
중요한 것은 자본금 2,000만 달러로 시작한 이 회사가 거둔 외형적 성공이 아니다. 「만국 공통어」 노래를 무기로 한 이 방송이 지금 세계인의 문화와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MTV는 영상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훨씬 뛰어 넘는다. 대중문화전반과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데 있어 MTV에 대한 예비적 이해는 필수조건이다.
우선 시간과 공간적으로 현대인은 MTV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젊은이들의 카페에서부터, 온가족이 모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까지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MTV의 화면을 한 번이라도 보지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엔 국내 케이블TV까지 가세, 가정에까지 쏟아지는 MTV의 공략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직접 MTV를 보지않은 사람이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란한 화면과 음악이 교차되는 영화, 우울하고 괴기적인 분위기의 CF,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아래위로 요란하게 비춰대는 TV카메라 등은 모두 「MTV세대」들이 만들어낸 「MTV기법」들이다.
MTV는 이제 젊은이들의 삶의 배경화면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청년문화의 거대한 「아이콘(Icon)」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MTV 이전에도 TV에 음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서의 뮤직비디오는 존재했다. 그러나 MTV는 3∼4분에 불과한 비디오 클립만을 24시간 내내 틀어대는 독특한 방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산지로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낸다.
하루에 200여개, 일주일이면 2,000여개의 뮤직비디오들이 「흘러가는」 MTV속에서 각각의 뮤직비디오들이 채택하는 전략은 감각적인 화면. 그들은 시청자들을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TV를 보도록 최면시켜야 하며, 그 수많은 화면 속에서 짧은 순간이라도 눈길을 붙들어두기 위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때문에 뮤직 비디오의 최고 목표는 「스펙터클」이 된다. 수많은 이미지와 이미지들이 빠르게 교차되고 현실은 과장되며 환상과 뒤섞인다.
MTV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실체는 여기에서 나온다. 끝없이 흘러가는 이미지의 강물들 속에서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가진 음악들도 평면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저항과 자유주의적인 의식을 근거로 출발한 록음악은 MTV 속에서 이미지들로 낱낱이 분해돼 원래 가지는 혁명적인 의미를 잃는다. MTV와 같은 상업주의적인 유통구조를 거부하는 것을 기치로 했던 얼터너티브 록까지 집어삼킨 거대한 공룡 MTV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무언가 자신을 지탱해나갈 만한 중심적인 인식체계가 있다는 사고틀을 깨버린다. 모든 것은 파편화한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며 본질과 현상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이것은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허무주의) 등 순수예술의 표현양식과 필름 느와르, 갱영화, 호러(공포)영화들의 양식이 뒤범벅이 되는 MTV의 외양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속에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라는 전통적 구분은 진부해진다. 이밖에도 MTV 속에서는 뚜렷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사라지며, 현재와 미래의 시간개념이 뒤섞인다. 진리와 이념이 사라져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불가능한 세기말 젊은이들의 의식은 MTV에 반영되며 MTV는 이 의식을 그들에게 세례시킨다.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MTV는 상업적인 홍보수단인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부추겨 음반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면 그속의 어떤 미학적인 완성도도,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예술방식도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끝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상업적 논리가 만들어 낸 이 MTV가 가장 중요한 현대 문화의 양식이 되는 현상, 이것은 혼돈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인지 모른다.
◎국내 음악 케이블채널들 제2의 MTV 꿈꾼다/mnet·KMTV 등 영향력 확산
국내 음악 케이블 채널들도 MTV의 성공을 당연히 꿈꾸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현황은 아직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잠재력은 무한하다.
m-net와 KMTV 두 음악 채널의 인지도는 스포츠 뉴스채널 등과 함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에서도 5위권 안에 드는 음악시장을 가진 우리나라의 음악채널 가능성은 무척 크다. MTV만을 틀어놓던 카페와 레스토랑의 화면들이 최근에는 모두 국내 음악 채널로 바뀐 것만 보아도 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급자쪽에 있다. 위성방송을 통해 MTV와 스타TV 등의 고급스런 화면에 맛을 들인 시청자들을 만족시킬만한 국내 뮤직비디오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채널이 시작되기 전 방송용 비디오 클립을 만드는 일이 전혀 자리잡고 있지 않던 가요계의 현실 때문에 처음엔 24시간을 어떻게 뮤직비디오로 채울 것인가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m-net와 KMTV는 가수별 뮤직비디오들을 자체 제작해나가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방송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이제는 대부분의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신곡발표와 동시에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VJ(비디오 자키)라는 신 직종의 스타도 탄생했다. 방송 사이사이 방송국 자체 광고화면인 스테이션 아이디(Station I.D, 방송국명을 알리는 자체 광고방송) 등에 응용되는 각종 컴퓨터 그래픽 신기술과 애니메이션 등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도 뮤직비디오의 영향이다. 비디오만으로는 붙잡기 힘든 흘러가는 시청자의 눈을 끄는 것이다.
m-net는 미국의 MTV본사와 계약을 맺고 하루 3시간 동안 MTV화면을 방송한다. 10대와 20대가 주 타깃. 최신곡만을 위주로 방송한다. KMTV는 보다 다양한 계층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며 음악 역시 여러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양사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같은 성격 구분은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MTV는 영화의 교과서?/왕자웨이·타란티노 등 90년대 두각 감독들/촬영기법서 이야기구조 파괴까지 큰 영향
MTV의 비디오들은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 장르를 이용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82년 마이클 잭슨의 유명한 「스릴러」는 호러(공포)영화를 이용했다. 「빌리진」은 스파이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이밖에도 뮤직비디오들의 일그러진 이미지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들을 낱낱이 쪼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뮤직 비디오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양식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은 90년대의 영화들에게 오히려 그 양식들을 빌려오게끔 역류시켰다. MTV적인 영화만들기는 젊은이들에게 뭔가 모를 세련됨과 쾌감을 느끼고 열광케 하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홍콩 감독으로 국내 영화마니아의 우상인 왕자웨이. 그는 첫 히트작 「열혈남아」에서 느린 화면이 곳곳에서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독특한 화면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바로 MTV에서 유행되던 「스텝프린트 기법」이다. 고속으로 촬영한 화면의 중간중간을 들어내 인물의 동작이 분절된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토막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밖에도 그룹 아하의 「Take On Me」에서 썼던, 사진을 만화로 바꾸는 「로토스코프」기술 등을 비롯, 광각·줌 렌즈의 빈번한 사용과 현란한 교차편집, 신나는 록음악의 사운드 트랙 등 MTV의 기법들은 영화의 곳곳에 스며들었다. 왕자웨이, 대니 보일, 쿠엔틴 타란티노 등 MTV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MTV적 특징은 고전적인 내러티브(대사)의 파괴이다. 발단―전개―전환―결말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는 사라지고 앞뒤가 뒤죽박죽된다.
주제의식보다는 단편적인 이미지에 의지하는 방식 또한 수많은 이미지의 결합체 MTV가 남긴 것이다. 이들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마약, 폭력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없다. 모든 걱정거리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는다. 다만 그 모습들을 그대로 나열하고 한껏 조롱할 뿐이다. 이것은 MTV가 아프리카 난민돕기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지구의 환경문제를 이야기 하며, 전자악기의 사용을 거부하는 언플러그드 음악을 펼치는 「의식」있는 행동을 보여도, 결국 그것이 본질에 대한 심각하고 종합적인 인식에서 비롯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MTV세대들에게는 모든 심각한 문제의식조차 하나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이윤정 기자>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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