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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문화상품 “기본이 없다”/우리문화 하드웨어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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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문화상품 “기본이 없다”/우리문화 하드웨어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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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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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무릎이 앞좌석에 닿는 극장의자, 번역이 엉망진창인 비디오, 고음부가 뭉뚱그러진 테이프, 쉽게 벗겨지지 않는 CD 비닐포장, 공중파보다 화면이 좋지못한 케이블TV, 비싼 돈 주고 화려하게만 만든 실속없는 전시팜플렛, 연습실도 없는 연극 극단, 잘 팔리지만 잘 「만들지」못한 책. 문화는 삶의 모습이자, 시대의 거울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껍데기와 알맹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내용만 좋다면야 모양이야 어쨌든 상관없다」는 말. 적어도 문화에 있어서는 통용되지 않아야 한다. 좋은 소프트웨어는 좋은 하드웨어에서 나온다. 문화의 공급과 소비 차원에서 좋은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의 질을 높인다. 하지만 우리 문화의 하드웨어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작가, 화가, 가수, 연기자 등 소프트웨어 생산자들의 노력을 포장하고, 마케팅하려는 하드웨어의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문화의 하드웨어. 그 현주소는?

◎출판/책디자인 인력 태부족/편집·인쇄·장정 획일적

좋은 책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들 한다. 잘 쓴 책, 잘 만든 책, 잘 팔리는 책. 이중 「잘 만든 책」은 편집과 인쇄, 장정이 뛰어나 독자들의 눈을 끄는 책이다.

현재 국내 출판사의 수는 1만2,000여개. 일본의 5,000여개보다도 훨씬 많다. 하지만 1년에 1종의 책이라도 출판하는 곳은 2,000여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 출판사는 200여개 남짓한 실정.

책 장정의 문제는 이렇게 왕성해 보이는 출판계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출판디자인 전문인력이 태부족이라는 데 기인한다. 1년에 수백종의 책을 내는 대형출판사의 경우도 전문 디자이너는 5∼6명을 넘지 않을뿐더러, 대개 1명의 디자이너를 두거나 아예 전문인 없이 외주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책 내용이나 출판사와 관계 없이 단행본의 장정이 획일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종이표지 장정)의 구분이 뚜렷한 미국, 문고판형 책 보급이 일반화한 일본과 구분된다.

전반적인 책의 편집, 인쇄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책의 다양한 형태가 보급되지 못하는 이유는 유통 문제와도 맞물려있다. 국내 단행본 출판의 주류인 신국판형이외 판형의 책은 진열도 잘 안된다. 서점의 매대(매대) 자체가 신국판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하종오 기자>

◎비디오/대본도 없이 번역 ‘어색’/텔레시네과정 화질 손상

비디오로 출시되는 영화의 수는 한달에 80∼100여편. 무성의한 비디오 제작의 현실은 번역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수입외화의 번역 수수료가 최소 80만원인데 비해 비디오는 25만원에서 30만원 정도. 가장 큰 차이는 영화는 대본을 보고 번역을 하는데 비디오는 대부분 대본을 구하지 않고 화면을 보고 들으며 번역 자막을 만들어 낸다는 것. 때문에 번역자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대사는 한글로 옮길 수 없다. 배우들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도 자막이 바뀌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야 할 때가 많다.

어두컴컴해서 분간이 잘 안되는 화면과 깨끗하지 못한 음질도 상쾌한 비디오 시청을 방해하는 요인. 대부분 영화필름을 테이프로 옮기는 「텔레시네」과정에서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점 때문이다. 국내에 현재 10여개의 텔레 시네 업체들이 영화를 방송용 혹은 비디오용으로 쓰이는 1인치 마스터 테이프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노후한 시설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이 과정에서 화질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의 경우는 영화 필름의 현상 및 녹음 단계부터 워낙 원시적인 기술 수준인지라 이 필름이 다시 텔레 시네를 거쳐 비디오로 만들어지면 동시녹음 작품인 경우 대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또 스테레오 음향이 가능한 비디오 재생기를 가지고 있어도 녹음된 상태가 하이파이가 아니어서 제대로 된 음을 즐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돌비 사운드나 서라운드 입체 음향 영화도 단순히 모노 사운드 비디오로 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이윤정 기자>

◎음반/고음 안나는 테이프… 뜯기 어려운 CD포장

테이프와 CD의 현저한 음질 차이에도 불구하고 CD와 테이프의 판매비율은 3대 7로 아직 테이프 소비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릴 테이프를 크롬 재질로 만드는 경우는 폴리그램 정도 뿐 대부분은 SN(신호대 잡음비)이 떨어지는 노멀(normal) 테이프를 이용한다. 가격 때문이다. 같은 테이프라도 외국 것과 비교하면 답답한 느낌이 든다. 특히 자동차 같은 좁은 공간이나 성능좋은 녹음기로 들으면 고음부가 뭉뚱그려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외국의 경우는 모두 크롬 테이프다.

테이프의 음질을 좌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제조공정. 대량 복사시 64배속이냐, 32배속이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국내에서는 단기에 대량 생산하기 위해 64배속으로 제조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64배속은 어학용 테이프를 녹음할 때나 쓰는 방식이다.

외국 음반의 가이드 격인 해설지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흔히 「속지」로 불리는 해설지는 일본의 경우, 가사의 일본어 번역은 물론이고 사진과 연주자의 상세한 역사, 수준있는 해설이 곁들여진다. 그러나 국내 속지는 영문 자료를 베끼기에 급급하다. 역량있는 필자도 많지 않지만 해설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주요 원인. 쉽게 벗겨지지 않는 CD 비닐 포장, 겨울에는 툭하면 부서지는 케이스도 투자에 인색한 우리 음반 하드웨어의 한 단면이다.<김지영 기자>

◎케이블TV/흐릿한 화면에 잡음… 공중파보다 못해

공중파보다 방송화면이나 음성이 좋아야 할 케이블 TV가 오히려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화면이 흐릿하거나 화면에 줄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소리도 웅웅거리면서 답답하게 느껴지기 일쑤다. 가입시 설치기술이 미숙한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일단 설치만 끝나면 애프터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 컨버터(전기신호를 영상·음성신호로 전환시키는 장치)의 원천적인 문제도 있다.

특히 한국형 컨버터를 설치한 경우 화질이 나쁘다는 가입자들의 불만이 많다. 기술개발이 아직 안된 경우다. 특히 DCN(채널 22번)은 공중파인 KBS2와 주파수 대역이 같아서 화질이 나쁘다는 지적. 가입자들은 『가입자 늘리기에만 급급해 관리는 소홀하다』고 비난한다.<박천호 기자>

◎영화/앉으면 무릎닿는 극장의자/앞사람 피해서 보려니 ‘고역’

옴짝할 수가 없다. 극장 의자와 그 공간이 너무나 좁기 때문이다. 불편은 그것 뿐이 아니다.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서는 앞사람의 머리를 피해 고개를 수십번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지난해 7월에 개정된 공연법 시행규칙 제4조 「공연장의 의자에 관한 규정」. 1인의 점용 폭은 50㎝이상, 의자간 앞뒤 간격은 95㎝이상. 그러나 서울시내 120여개 극장중 이를 지키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그나마 옛 규정(45∼85㎝이상)을 지킨 곳도 최근 222석을 줄이며 과감한 시설보수를 한 스카라 극장 뿐.

의자 폭이 중학생에게도 불편한 40㎝ 미만인 곳도 I, M, O극장 등 10개 가까이 있다. 강남의 D, G, C 극장은 의자간 앞뒤 간격이 70㎝ 이하다. 심지어 B극장은 성인 남자가 앉으면 무릎이 앞 의자 뒷면에 닿는 거리인 60㎝에 불과하다. 이쯤이면 영화보기가 「고문」이다. 스크린과 앞줄 의자와의 거리도 500석 이상일 때는 15m, 그외에는 7m이상 규정을 지키고 있는 극장이 거의 없다. 앞에 앉아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가 뻐근할 수 밖에 없다.<이대현 기자>

◎연극/극단 95% 연습실조차 없고/비싼 소품·의상도 보존안돼

여름 극장안. 에어컨을 틀면 소음 때문에 공연에 방해를 받고 끄면 찜통더위에 시달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일반 건물의 좁은 지하공간에 극장을 만들다보니 예술적 완성도나 관객에 대한 배려는 거의 생각할 수 없다. 용케 무대, 분장실, 객석을 우겨넣으면 다행이다. 배우들이 분장을 지우기 위해 공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 중 95% 이상이 자체 연습실이 없다. 아쉬운 대로 연습공간과 방음시설, 음향·조명 장비 등이 갖춰져 있는 연습실은 문예회관, 예술의전당, 예일연습실 등 5, 6개 정도에 불과. 그나마 워낙 수요가 많아 연습실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심지어는 극단 사무실이나 개인 집에서 연습을 한다.

무대, 소품, 의상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제작비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유지, 보존이 안되고 한번 쓰고 폐기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번 쓰고 말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애초부터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극의 완성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학전 기획실장 전상섭)<황동일 기자>

◎전시/난해한 해설에 엉망인 인쇄/‘돈치레’ 팜플렛 왜 만드나

돈 가뭄과 풍년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미술계.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 미술계의 하드웨어도 비정상적인 투자와 모습이 공존한다.

미술계의 명사라면 수요일, 목요일 하오 시간엔 메뚜기처럼 뛰어다녀야 한다. 전시 개막 파티는 명사들의 사교장을 방불케 한다. 진지한 토론은 없다. 그래서 작품이라도 보기위해 집어든 팜플렛은 일반인들에겐 그야말로 난수표. 구상작품의 경우엔 보이는 대로 그럭저럭 이해를 하겠지만 추상화라도 되면 관람자들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외장만은 세계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두껍고 화려하다. 그러나 그속을 들여다 보면 실망. 색분해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팜플렛에 나온 작품은 실제와 큰 차이를 보인다. 많게는 1,000만원 이상 들이지만 작가의 경력을 뒷받침하는 돈치레에 불과하다. 헛된 투자다. 반면 작품의 유지와 보존, 자료관리에는 인색하기 그지 없는 게 미술계. 미술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의 경우 주최측에선 대상 작품이라고 「압수」를 하지만 몇년 후에는 작품이 어느 곳에 소장돼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J미술대전의 경우가 이런 경우. 또 국내 최대 규모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조차 팜플렛과 신문기사를 수작업으로 보관하는 게 전부. 데이터 베이스화는 꿈도 못꾸는 현실이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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