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기나긴 침묵끝 ‘부드러운’ 시집 한권들고 다시 독자곁으로 돌아와그가 돌아왔다.
「겨울공화국」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의 시인 양성우(55). 스스로의 말마따나 거의 1년이상 『숨다시피 지내던』 그가 70편 남짓한 시편들을 묶은 전작시집 한 권과 함께 시마을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창작과비평사간) 시집제목 하단에 자그맣게 달려있는 시인의 이름을 빼면 전혀 다른 사람의 시집 같다. 그만큼 이전 시들과는 달라진 면모를 보인다. 「겨울공화국」(77년)에서 「그대의 하늘길」(87년)까지 불의한 시대를 겨냥하던 그 특유의 꼿꼿함과 앙칼짐, 그리고 반골적 풍모가 보이지 않는다. 낱낱의 시편들은 낮은 음으로 조율된 관현악 소품처럼 단아하고 차분하다. 스스로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고, 바깥 세상과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세상의 한가운데」(90년) 이후 시작활동을 중단했던 7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기느냐, 지느냐」하는 살벌한 게임의 법칙만이 횡행하는 세계에서 참 많이도 좌절했습니다. 제 역할에 대한 회의와 자기를 올곧게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그는 13대 국회의원으로서 현실정치판에 몸을 담그면서 겪어내야만 했던 모진 시련과 좌절의 경험을 『사고당했다』는 말로 짧게 요약했다.
70년대에는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저항시인으로서, 80년대에는 정치인으로서 현실과의 팽팽한 대결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이제 싸움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자기성찰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찾아 읽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좀더 많은 시간을 배려하려고 애쓴다. 그는 온통 읽고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이 단조로운 일상이 그지없이 편안하다. 그저 시쓰는 일에만 매진하겠다는 작정이 있을 뿐, 아무 계획도, 유별난 결심도 세우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걸 보니 나는 천상 시쓰면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욕심 없고, 한 내년 봄쯤 시집이나 한권 묶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이지요』
「마음을 비우면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인도에 가고 싶다」 부분)는 그의 고백처럼 그는 벌써 평정심의 경지에 든 것일까? 시대의 한복판을 지나온 느리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서 연륜의 부드러운 힘이 느껴진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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