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의 개인비서가 최근까지 청와대 정무비서실에 약 5개월간이나 아무런 공식보직 없이 「무적자」신분으로 근무한 사실은 이 정부의 국정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아들이 수렴청정했다는 세간의 비아냥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았음이 드러난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명천지에 최고통치자의 집무실 바로 턱밑에서 어떻게 이런 탈법적인 국정유린행위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 정말 개탄해 마지 않는다.
청와대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이다. 이 정부의 정점인 것처럼 그 기강과 질서에 있어서도 타기관의 모범이 돼야 함은 물론 모든면에서 최고임을 자부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아무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고, 머물고 싶다고 머물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다. 일반공무원이 명에 의해 파견근무를 하려 할 때나, 취재기자가 청와대 출입을 위해 출입증을 발급받으려 할 때, 거치게 되는 신원조사는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다. 두 말 할 필요없이 최고 통치자가 집무하는 곳이기에, 조그마한 보안상의 허점이라도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경호상의 문제로 인해 이같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소정의 절차」를 누구도 불평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철벽같은 요새인 청와대에 현철씨의 개인비서였다는 정대희라는 사람은 「민간인」신분으로 무적근무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실 행정관」이라는 명함과 출입증을 들고 실제로 5개월간 「행정관」역할까지 수행했다는 것이다. 참 기막힌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라고 하지만 이것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현철씨가 자신의 사조직과 청와대비서실이라는 공조직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운용한 것이라면 이것은 현철씨의 탈법적인 행동을 탓하기 전에 이런 탈법, 무법을 버젓이 용인한 청와대 행정책임자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의 공조직 어느 곳에 자신의 심복을 근무시킬 수 있는 규정은 국가공무원법 어디에도 없다. 역대 어느 정권 아래서도 결코 찾아보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같은 국정문란 행위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납득할 만한 해명이 뒤따라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줄 안다.
차제에 정부는 청와대를 비롯, 주요 권력기관에 포진하고 있는 이른바 「김소장계 사람」들의 색출도 아울러 병행해야 한다. 그간 이에 관해서는 항간에 너무나 「소문」이 무성했다. 허물어진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작업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의 창궐로 한때나마 설 자리를 잠식당하고 이로 인해 사기가 떨어졌던 공무원사회에 그 「자리」를 되돌려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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