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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까마귀떼’/이병천 장편소설(문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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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까마귀떼’/이병천 장편소설(문학의 창)

입력
1997.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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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 좌절 그 울음을 달래려 썼다”/가슴을 두드리는 훈훈한 문체 돋보여소설가 이병천(41)씨의 문체는 훈훈하고 정감이 넘친다. 입심 좋은 이야기꾼이면서 말 속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다. 독자들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드는 소설이 유행하는 요즘, 머리가 아닌 가슴을 두드리는 그의 작품은 분명히 차별성이 있어 보인다.

이씨가 최근 문학동네에서 펴낸 장편소설 「저기 저 까마귀떼」는 작가가 아스라한 기억 속의 어린시절을 배회한 작품이다. 93년 발표한 「모래내 모래톱」이 유년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이야기라면 「저기…」는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던 몇개월 간의 회상이다. 진학을 못해 괴로운 산골의 어린 화자가 주변 인물들의 고통, 세태를 따라 처신을 바꾸는 약삭빠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 삶의 얼룩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나」는 1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지만, 체력검사에서 떨어져 중학교 진학에 실패한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동네 청년 설우와 자칭 시인인 원우형이 할 일 없는 「나」의 친구들이다. 6년 동안 짝이었던 향희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진로를 걱정해주는 예쁜 아이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내내 앓아온 동생의 죽음, 설우와 결혼 약속을 했던 서운이누님의 외도, 결국 스님이 된 원우형 등의 이야기가 조용한 전원의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뚜렷하게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전에서 몸과 마음을 다쳐 말더듬이가 된 설우, 고교졸업 후 시에만 매달리나 성공하지 못한 시인 원우, 아름답고 어린 젖가슴을 가진 향희 등. 이병천씨는 이들의 모습을 추억 속의 음각화처럼 친숙하고 다정하게 그려냈다.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는 베트남전의 상처, 차갑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방황해야 했던 지식인 등 당시의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고통 보따리의 크기를 감지할 수 있다.

걸죽한 입담도 빼놓을 수 없다.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우리 말의 재미를 한껏 전달한다.

이병천씨는 『어린 그때의 아픔들이 내 몸을 들쑤실 때면 언제나 한 소년이 훌쩍거리며 마을 고샅길을 돌아나오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울음을 달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셈이다. 아마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아득하게 쓰라린 과거를 비로소 청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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