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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질병·소외의 ‘3중고’/노인문제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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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질병·소외의 ‘3중고’/노인문제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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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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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이상 290만명/10명에 1명 ‘생활보호’/과반이 자녀와 딴살림/TV 외 소일거리도 없어97년 3월 현재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290만 8,000명. 이중 많은 노인들이 가족의 무관심과 사회의 외면 속에서 외롭고 힘겨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복수응답)은 경제적 빈곤(56.9%)과 건강악화(55.4%), 가정과 사회로부터의 소외(27.6%) 등의 순이었다.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되는 선진국과는 달리 자식에 의존해야 하는 데서 우선 비롯한다. 노인들의 한달 용돈은 대략 3만∼5만원이고 용돈이 거의 없는 노인들도 32.1%에 달했다. 주거문제도 노인빈곤의 큰 요인이다. 노인부부 가구를 포함한 대도시 노인단독세대의 주거형태는 자택이 11%에 그친 반면 전세나 영구임대가 73.8%, 사글세가 12.4%였다.

자녀와 별거하는 노인의 한달 평균 생활비는 20만원에 불과했고 생활비 조달은 직접 일을 해 벌거나(27.2%) 국가보조(24.3%)와 자녀(20.5%)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 취업을 희망하는 노인이 절반이 넘었으나 건강문제와 자녀의 반대, 일자리 부족 등으로 24%만이 취업하고 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데도 혼자 살아야 하는 노인들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97년 3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중 생활보호 대상자는 26만 5,000여명으로 10명중 1명꼴이다. 월 13만 3,000원의 생활비가 지원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신경통과 관절염, 고혈압, 중풍, 치매, 당뇨, 심장병, 시각·청각 장애 등 질병을 호소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적절한 치료·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치매노인이 급증, 60세 이상 치매노인이 95년 13만9,000여명에 달했다. 이 숫자가 2020년에는 39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망했다.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소외감 역시 문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자녀와 떨어져 사는 60세이상 노인이 전체의 53%에 달한다』며 『노인 3명 가운데 2명은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상실도 노인소외의 큰 요인. 자식과 같이 사는 노인의 31.9%가 가정에서 결정권이 없고 37.4%는 「의견 제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는 것도 큰 고통. 노인들 대부분이 TV시청이나 장기 바둑 화투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말동무도 아예 없거나(33.6%) 1,2명(46.2%)에 불과했다.

정부는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노령수당 지급 확대, 건강 관리, 노후생활여건 조성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예산과 서비스의 질 면에서 요원한 수준이다. 생활보호 노인에 대한 지원금이 최저생계비의 절반에 불과하고 많은 노인들은 거기에서조차 배제돼 있다.

노인취업알선센터와 노인공동작업장은 기업체와의 연계부족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이며 예방·치료·재활·보건을 포함한 종합적인 노인의료체계도 확립돼 있지 않다.

전국 137개소의 무료노인복지시설에는 8,000여명의 노인들이 수용돼 있지만 운영상 어려움이 많다.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정재원부장은 『입소자 20인당 1명으로 정해져 있는 생활보조원이 실제로는 입소자 35인당 1명에 불과하다』며 『시설당 간호사 1명만 배치돼 있을 뿐 의사와 물리치료사 영양사 등은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아 양질의 서비스 제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

◎시설보호 노인들의 애환/“하루라도 안아픈게 소원”/치료받고 TV보고 자고…/아픔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같이 지내던 동료들 하나 둘 세상 뜰때마다 가슴 ‘덜컥’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의 서울시립 노인요양원에는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67명의 무의탁 노인들이 살고 있다. 65∼90세인 이들은 고혈압 중풍 당뇨병 관절염 신경통 등을 앓고 있다. 대부분 양로원에서 지냈거나 연고자 없이 혼자 살던 거택 보호대상자들이다.

전속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간병인 등 26명의 직원이 이들을 돌보고 있어 기본적인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질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을 덜어 주지는 못한다. 노인들은 대개 수면 운동 대화 TV시청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부업으로 쇼핑백에 끈을 다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증세가 심한 노인들은 대부분 병상에 누워 지낸다. 매주 학생과 주부 대기업사원 등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목욕과 운동을 시켜주기도 한다.

요통과 악성근육경련으로 4년째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분이(77) 할머니의 바람은 한 순간이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하는 것이다. 84년 사고로 아들을 잃고 며느리와 손자마저 미국으로 떠나 혼자 남은 할머니는 그나마 치료라도 받으며 사는 게 다행이라고 자위하며 하루를 보낸다. 『매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지만 온몸이 안 아플 때가 없어.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 오래 서 있거나 앉을 수도 없거든. TV보는 것 빼고는 치료받고 잠자는 게 전부야. 누워서만 지내니 갑갑하고 무료해』

1년째 거동을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 지내는 김요세피나(66) 할머니는 거울을 눈처럼 사용해 일명 「거울 할머니」로 통한다. 척추신경과 왼쪽다리 마비로 고개도 돌릴 수 없기 때문에 거울에 비춰 식사를 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살핀다. 그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누워서도 얼굴을 보며 멋을 낸다』고 웃지만 할머니에겐 삶의 몸부림일 뿐이다. 93년초 계단에서 넘어져 척추신경을 다친 뒤 장기간 치료를 받아오다 1년전 다시 낙상, 완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시집간 딸 하나가 있지만 그나마 형편이 어렵고 아이가 많아 간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요양원에 들어 와 누워서 여생을 보내게 됐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소변통을 비워 주던 어린 외손녀에 대한 그리움이다. 『손녀의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요.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 아이와 다시 살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갑니다』

요양원 노인들은 늘 병마에 시달리지만 병으로 한명씩 세상을 뜰 때 마다 요양원 전체가 술렁거린다. 총무 최건순씨는 『해마다 30여명의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

◎어느 농촌노인의 항변/시골에 뭐가 있나/문화공간만 있어도 노인대학 다니러 서울 안가도 되는데…

경기 여주군에 사는 전옥선(73) 할머니는 요즘 쿡쿡 쑤시는 허리가 너무 얄밉다. 아픈 허리만 아니라면 매일같이 서울의 노인대학에 나가 장고 장단에 맞춰 춤도 추고 알파벳도 배우겠지만 주1회 출석으로 만족해야 한다.

할머니가 서울 이화여대 앞의 노인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동네에서는 경로당에 모여 앉아 고스톱치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춤사위와 장고 선생님을 찾아 왕복 10시간의 「고생길」에 나섰다.

노인대학에 나가는 날이면 아침 6시20분에 집을 나선다. 직행버스를 타고 양평에 7시20분께 도착, 8시발 서울 청량리행 비둘기호 열차표를 산다. 청량리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2호선을 갈아타야 점심시간쯤 해서 노인대학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에 가면 좋아. 파마 한번 하는데 동네에서는 2만원을 받지만 서울에는 공짜로 해주고 머리도 그냥 잘라 주는 복지관이 많아. 차비 2,000원에 점심값까지 써야하니 용돈이 많이 나가고 걷기에 지쳐 허리도 더 아프지만 그래도 서울에 가야 제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집에 있으려면 견딜 수가 없어』

할머니는 서울 갈 엄두조차 못내는 동네 노인들과 함께 양평 노인대학에 나갔다가 실망만 했다. 『한마디로 「메뉴」가 거의 없어. 돈이 없어서 재미있는 강의를 해 줄 선생님을 구하기가 힘든 모양이야』

할머니가 다니는 이화여대 앞 노인대학 학생 150여명 가운데는 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에 사는 노인들이 80명이 넘는다.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제대로 된 노인복지시설은 고사하고 여생을 보람있게 보낼 만한 문화공간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농촌 노인들의 또다른 고민은 의료문제.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교통불편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 전옥선 할머니가 노인대학에 나가는 이유의 하나로 『좋은 병원을 소개해 주는 선생님이 있어서』를 꼽듯 병원 문제로 서울을 찾는 농촌노인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농촌노인들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노인문화를 향수하지 못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립사회복지연수원 신혜령 교수는 농촌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은데도 상대적으로 노인복지를 위한 인적·물적자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지역 노인현황과 특성을 고려한 복지·문화시설의 균형 배치를 강조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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