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 알면 나 사살할 것” 황 비서 테러 가장 우려/한국 영사부 도착직후 “중서 알면 까다로우니 탈출 비밀로 합시다”/“왜 망명·귀순이라 하나 전쟁 막으려 남조선행”/침착·꼿꼿함 잃지않아『인간적으로 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장엽(74)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17일 밤 35일간 머물던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를 떠나면서 남상욱 총영사에게 그런 말로 인사를 표시하고 떠났다.
대사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19일 황비서가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도착한 직후 『중국이 알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비밀로 합시다』라고 요구, 처음에는 극비 중국탈출을 원했다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공개했다.
황비서는 이어 북한의 실상, 망명동기 등을 30여분동안 설명한 후 진술서를 일필휘지로 5분여만에 썼다. 그는 이어 옆에있던 김덕홍 북한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에게 『동생도 여기에 사인하지』하자 김씨는 내용도 보지 않고 사인을 해 두 사람의 신뢰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황비서는 언론이 사용하는 망명·귀순 등의 용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내가 왜 남조선으로 망명이나 귀순을 하느냐, 나는 한반도 통일과 전쟁방지를 위해 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한국행 동기와 목적을 강조했다.
황비서는 또 북한이 납치라고 주장하고 중국이 자유망명 의사 확인을 요청하자 언론과 인터뷰를 해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첫날부터 『내가 망명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반드시 사살하려 할 것』이라며 테러를 가장 우려했다.
황비서가 머물던 방은 3층 영사부의 2층 유국렬 참사의 사무실. 3평 남짓되는 조그만 방을 침실로 개조, 한달넘게 생활했다. 유참사의 사무실은 통로쪽으로 창문이 나있지 않아 황비서가 머무를 방으로 결정됐다. 영사부 내부의 조그만 뜰쪽으로 난 2개의 창문은 강력 철판으로 완전히 봉쇄했다. 북한 특수요원들의 원거리 저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남총영사에 따르면 김덕홍 부실장은 다소 갑갑해 하면서 영사부내 20평 남짓한 뜰로 나가 바람을 쐬기도 했다. 그러나 황비서는 침착함을 잃지않고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채 명상과 집필만을 계속해 영사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황비서는 귀순 첫날부터 2층의 총영사실에서 다소 느리기는 하나 한자도 고쳐쓰지 않고 자술서를 써내려가 북한 최고의 지식인임을 과시했다.
영사부 근처에서는 황비서가 필리핀으로 떠난 18일밤 장갑차와 무장경찰이 철수했다. 남총영사는 황비서가 머물던 방 창문의 철판을 앞으로 어느날 또 다시 뛰어들어 올지도 모르는 북한 「귀빈」을 위해 그냥 부착해 두겠다고 말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베이징=송대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