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장터에 가면 두가지 즐거움이 있다. 도심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풍물을 보는 즐거움과 싸게 사는 즐거움. 각종 묘기에 걸쭉한 입담을 늘어 놓는 약장수, 『뻥이요』라고 신나게 소리치는 뻥튀기 장수들 사이를 지나가며, 촌아낙네들과 흥정해 도시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 이것이 장터의 경제학이다.이뿐이랴. 닭발, 순대, 홍어찜에 소주나 동동주를 한 잔 하거나, 주위의 경치좋은 곳을 돌아본다면 금상첨화. 물론 도시화에 밀려 예전보다 많이 퇴색하기는 했지만 전국 곳곳에는 가볼만한 장터가 아직 많다.
▷성남 모란장◁
○애완견·보신동물 판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국내 최대의 5일장.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대원천과 복개천 일대에 자리잡은 모란장은 4자와 9자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선다. 모란장은 가히 만물시장이다. 화훼, 가축, 잡화, 곡류, 의류 등 없는 것이 없다.
냉이 달래 쑥 씀바귀뿌리 돌나물 등 봄소식을 전하는 봄나물은 아직 비싼 편이다. 냉이 한 근에 1,000∼2,000원, 쑥과 달래는 2,000원선, 씀바귀뿌리는 한근에 3,000∼4,000원이다. 모란시장의 명물은 역시 고추와 가축류. 고추는 음성이나 영양까지 가지 않더라도 직접 생산자들과 흥정할 수 있어 한 근에 3,000∼4,000원으로 싸다. 시즈 불독 진도개 등의 애완견도 시중보다 싸며, 오리 염소 토끼 등은 그 자리에서 잡아준다. 오리가 7,000원이며 토끼가 1만3,000∼1만5,000원, 염소가 12만∼15만원선이다.
각설이타령을 하며 테이프를 팔고있는 여장 남자,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바지를 팔고 있는 장꾼, 소고를 치고 다니는 엿장수 등 볼거리도 많다.
▷인천 소래장◁
○젓갈류 20∼30% 싸
정기시장은 아니지만 값싼 해산물과 포구가 주는 풍물이 5일장 이상이다. 협궤열차가 다니던 소래역 앞길을 따라 장터에 들어서면 산낙지, 꽃게, 바닷가재, 놀래기 등 인근에서 잡은 생선을 파는 장꾼들과 구경꾼들로 분주하다.
명물은 젓갈. 오젓 육젓 추젓 등의 새우젓뿐 아니라 명란젓 창란젓 오징어젓 등 대부분의 젓갈류를 취급하고 있다. 숙성된 새우젓은 물론, 배에서 바로 내린 생새우에 소금을 한 됫박씩 뿌려주는 생새우젓도 일품. 정력에 좋다는 장어를 때로는 헐값에 살 수 있고, 젓갈류는 시중보다 20∼30%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철길 뒷쪽으로는 포구보다 더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개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어수선한 길 사이로 팔다남은 생선이나 건어물로 팔아야할 생선들을 말리는 덕장이 장관이다. 포구의 진한 맛은 여기에 있다.
▷강화장◁
○화문석·순무가 주종
화문석, 인삼, 순무 등의 특산물과 연안의 해산물이 유명. 또 주위 바다풍경에 유적지 등 볼거리가 많다. 장날은 2자와 7자로 끝나는 날마다 선다. 주종은 화문석. 말 그대로 「꽃무늬가 있는 자리」이다. 장날이 되면 강화 각지에서 오토바이나 택시를 타고 온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한길이 훨씬 넘는 화문석을 안고 토산품센터 입구의 장터로 몰려온다. 화문석은 시중가보다 10∼20%정도 싼 편. 또 순무가 전봇대에 기대어 한 길씩 쌓여있다. 뿌리가 주먹만하고 약간 보랏빛을 띤 순무는 그 뿌리로 깍두기를 담그면 특유의 쌉쌀하고 달콤한 맛이 더욱 살아난다.
마니산 가는 길로 15분정도 가면 외포리 포구. 이곳은 서해에서 잡은 각종 어물이 강화로 들어오는 곳. 젓갈시장으로 유명하다. 특히 김장철에 젓갈시장에 들르면 새우젓 밴댕이젓 오징어젓 창란젓 등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담은 드럼통이 손님을 맞이 한다.
주위에 볼 것도 많은데 강화 서문을 지나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청동기시대 유적 북방식 고인돌과 고려 오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출발해 석모도의 보문사를 다녀올 수도 있다. 10여분 배를 타고 새우깡이라도 준비해 바다로 던지면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한꺼번에 날아드는 장관.
또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거쳐 전등사까지 갔다 온다. 다음은 마니산에 올라 첨성단을 보고 반대쪽인 정수사로 내려오면 강화의 면모를 어느정도 보는 셈이다.
▷전남 구례장◁
○산나물·토종꿀 유명
각종 산나물과 토종꿀로 유명하다. 지리산 깊은 자락에 자리잡은 구례에서는 3, 8자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선다. 지리산에서 나는 온갖 산나물로 장날이면 북적거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나물에서부터 이름도 모를 맛깔스런 나물 등이 나와 그야말로 산나물의 천국이다. 두릅, 더덕, 취나물, 가죽나물, 도라지, 죽순 등이 널려있다. 또 버섯, 생지황, 당귀, 매실 등 100여가지에 달하는 한약재도 쏟아져 나온다.
가까운 곳에는 화엄사가 있다.
◎변하는 장터/옛 흥은 줄어들고 수입농산물도 등장
전통사회에서 정기시장은 단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은 아니었다. 사교와 유흥, 그리고 여론형성의 장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근 마을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며, 혼담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굳이 물건을 살 요량이 아니더라도 구경삼아 나오기도 했다. 씨름판이며 윷판, 술판이 벌어지고 여흥을 돋우는 놀이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벌이거나 대중집회를 열어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3·1운동이 지방으로 전파되면서 대부분 장날을 기해 일어났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장날은 당시에는 휴일로 기능했다.
이런 정기시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농촌이 「잘 나가던」 76년 무렵 752개이던 삼남지방의 장터는, 93년 564개로 줄어들었다. 대도시에 편리한 대규모 유통망이 형성되고,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도, 장터에 나오는 물건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장터의 수만이 아니다. 예전의 사교와 유흥의 모습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자연발생적인 「딴따라」의 모습은 드물고, 중국과 미국의 농산물이 버젓이 들어서 있다. 어떤 품목들은 서울에서 싸게 구입해서 트럭으로 내다팔기 때문에 가락시장, 남대문시장 등지보다 비싸다. 특산품도 바로 서울로 판매돼, 현지 장터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터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인다. 3년동안 한국의 장터를 찾아다닌 전성현(대일고 교사)씨는 『향수와 신선함을 기대하며 장터를 찾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터의 사람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곳곳에 남아있는 옛장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유병률 기자>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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