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의 배후에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한이헌·이석채씨가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공판 직전 발표한건 다름 아닌 검찰이었다. 그런 검찰이 이제 와서 들끓는 전면 재수사 여론에도 아랑곳 없이 한·이씨에 대해 재수사할 필요가 없다고 나서고 있어 유감스럽다.검찰의 사실 공개후 펼쳐지고 있는 이해 못할 사실중의 하나는 외압을 행사해 6,900억원을 대출케 했음이 명명백백해진 이들 두 사람이 오히려 검찰이 발표한 혐의 자체를 부인하거나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전면 부인, 한씨는 「그렇다면 그런 모양」이라고 말하는 등 반성은 커녕 성의있는 자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두 사람에 대해 검찰이 여전히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재수사할 필요도 없고 처벌할 수도 없다는 것은 국민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어 의혹만 키울 위험이 크다. 이러려면 검찰이 두 사람의 대출압력 사실은 뭣하러 발표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하겠다.
설혹 검찰 주장대로 그들이 돈을 받지 않았다고 쳐도 우리 형법에는 직권남용죄라는 것도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에 없는 일을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5년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명문규정(123조)이 있다.
91년 5공 비리수사때 전두환 전 대통령 친인척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산하기관에 압력을 넣은 이학봉씨 등에게 이 조항이 적용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법조계에서도 이 조항의 원용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이 직권 남용죄가 성립되려면 대출규정을 고치거나 비정상적으로 대출케 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의 경우 정상적 절차에 따른 정책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죄 적용불가론을 펴고있는 것은 어불성설의 억지 논리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이란 비록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자리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서관일 뿐 경제업무를 직접 처리할 행정집행권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그들이 정상적 정책 판단을 거쳐 대출을 가능케 해주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관련 부처의 경제정책회의에 넘겨 공개적으로 협의한 끝에 정부의 결정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보사건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적법하게 처리됐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뭣을 말하는가.
이런 행정 원칙을 무시한채 비서관 신분으로 은행장에게 직접 은밀히 대출압력을 행사한 것은 직권 남용죄가 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더 이상 구차한 발뺌을 하지 말고 즉각 재수사에 나설 것을 거듭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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