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내 회교사원 건립 등 철저한 ‘현지밀착’/3년 연속 적자행진 딛고 매출액 수직상승/“2005년 매출 21억불 5대 그룹 진입” 야심『뜨리마 까시(감사합니다), 뜨리마 까시』
이글거리던 적도의 태양이 힘을 잃기 시작하는 12일 저녁 6시. 인도네시아 동부자바 빠수루안(Pasuruan) 교외의 제일제당 현지공장에서 600여명의 인도네시아 직원들이 인사말을 나누며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상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공장안에 탈의실이 있는데도 옷을 갈아입지않은채 굳이 제일제당 마크가 선명한 푸른색 작업복 차림으로 퇴근을 한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이 화교와 네덜란드인 등 외국인에 대해 뿌리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만큼 제일제당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현지에서는 커다란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사료공장에서 일하는 마르모씨는 『제일제당은 의료보험은 물론 경조사때마다 위로금이 지급되는 등 여느 외국계 기업과는 틀리다』며 『직원들 모두 이곳에서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제일제당의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제일―삼성 인도네시아」의 주재원 20여명은 요즘 흥분상태다. 주력생산품인 라이신(Lysine)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유럽과 미국으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동물성장촉진제인 라이신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동물사료의 주원료. 세계적으로 제일제당을 포함한 5개 회사만이 생산기술을 갖고 있는 고급제품이다. 최근에는 지난해부터 생산을 시작한 조미료와 사료까지 매출이 급증, 20여명이 200명의 역할을 해도 일에 치이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억4,000만달러를 기록한 매출액이 97년에는 2억달러를 목표로 수직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00년까지는 매출액이 12억달러, 2005년에는 21억달러를 돌파, 인도네시아 5대 그룹에 진입할 수 있다』는게 제일제당 사람들의 야무진 꿈이다.
그러나 제일제당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초기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불과 5년전만해도 「가장 실패한 해외투자」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제일제당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은 아직 삼성그룹의 계열사이던 89년. 그래서 아직도 현지법인 이름에 「삼성」이 남아있다. 찬반 논란 끝에 7,000만달러의 거액을 투입한 최대의 해외사업이었지만 3년동안 적자행진을 면치 못했다.
91년 라이신 공장이 가동됐지만 대체재 성격을 지닌 콩의 풍작으로 톤당 2,500 달러였던 라이신 가격이 순식간에 1,900달러이하로 곤두박질했다.
현지인과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마찰도 끊이지 않았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현지인들은 매일 하오 3시가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려 주재원들을 당황케했다. 게다가 실수로 현지인의 머리에 몸이 닿기라도하면 『영혼이 빠져 나갔다』고 거칠게 항의하는 등 도무지 함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5%의 지분참여를 했던 인도네시아 최대그룹인 아스트라그룹까지 공중분해되면서 내부에서 『국내에서도 경험이 없는 라이신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는 비난이 강력히 제기됐다.
93년 김성배 사장이 부임해오면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김사장은 라이신의 원료인 당밀과 원당 등을 쫓아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당초의 「원료지향형」입지정책이 옳다는 결론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경기가 어려울때 투자한다」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철학대로 자카르타 근교의 세랑과 좀방 등지에 대규모 신규투자를 결정하는 한편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교사원을 공장안에 짓는 한편 핵심적인 부분을 빼고는 대부분의 업무에 대한 권한을 현지인에게 맡겼다. 주재원들에게는 『혹시라도 실수로 현지인들의 머리를 만질 염려가 있으니 현지인과 얘기할 때는 아예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그사이 제일제당 인도네시아공장은 「효자」공장으로 늠름히 변신했다. 라이신 가격이 톤당 3,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고 현지인들도 마음의 벽을 허물고 따라줬다. 지난해 10월 반둥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폭동이 일어나 분위기가 험악할때는 오히려 현지직원들이 『회사를 보호하겠다』며 나서기까지 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가장 실패한 투자」가 「가장 성공한 투자」로 바뀐 것이다.
제일제당의 약진으로 30년넘게 인도네시아 조미료시장과 사료시장을 독점해온 일본 아지노모토와 태국의 화교계 사료재벌인 샤론-폭판은 요즘 시장지키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최근 제일제당이 새로 진출한 육계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연 6억수가 넘는 현지 닭고기 시장을 주물러 온 샤론-폭판은 하루가 다르게 잠식해 들어오는 제일제당의 위세에 눌려버린 상태다.
빠수루안 공장의 이재원 공장장은 『제일제당이 자랑하는 발효기술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종합 육류회사로의 「수직적 다각화」를 하기위해 양계사업에도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제일제당 인도네시아 공장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독립해 지난해 5월 그룹화를 선언한 제일제당이 해외에서 제2의 제일제당그룹을 건설하려하는 야심찬 무대가 되고 있다.<빠수루안=조철환 기자>빠수루안=조철환>
◎떠오르는 시장 인니/‘투자매력 1호’ 국내기업 진출 320건 9억불
인도네시아가 한국기업의 「매력 투자대상 1호」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96년말 현재 국내 기업의 대인도네시아에 투자건수와 규모는 총 320건에 9억4,500만달러로 95년까지 동남아에서 수위를 차지하던 필리핀을 제쳐 버린 상태다.
인도네시아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풍부한 자원과 인구 2억의 거대시장이라는 외형적인 통계말고도 비교적 안정된 정치상황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는 그동안 투자의 주류를 이루던 봉제 섬유 등 중소기업체들 대신 대기업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인 티모르를 앞세워 자동차산업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LG전자(6,300만달러) 선경인더스트리(6,263만달러)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초국경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고의 투자지역으로 부상하면서 인도네시아 시장은 자동차 전자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일류업체들의 각축장이 돼버렸다. 제일제당이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간파, 시장개척에 나선 조미료와 사료시장도 이미 외국 유명업체들이 선점한 상태다.
인도네시아 조미료시장은 중국계 현지업체인 사사(SASA), 일본 아지노모토와 한국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한국미원의 3파전으로 압축된다.
시장규모는 연간 8만톤인데 미원은 식당같은 대형 업소용에서 강하고, 아지노모토는 일반 가정소비용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제일제당은 주로 통조림식품에 들어가는 산업용을 생산한다.
연간 550만톤 규모인 인도네시아 사료시장에서 제일제당과 중국계 태국기업인 샤론―폭판이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샤론―폭판은 그룹전체 매출이 100억달러를 넘어서는데 인도네시아에만 7개 공장을 가동하며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제일제당은 샤론-폭판에 비하면 시장점유율은 떨어지지만 라이신을 생산하는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일제당이 최근 출사표를 던진 연간 6억수 규모의 인도네시아의 닭고기 시장도 사료시장과 비슷한 구도이다.
현재 제일제당은 연 2,000만수를 공급하고 있는데 2000년까지 공급규모를 1억수까지 늘릴 예정이다.<김범수 기자>김범수>
◎인터뷰/인니 제일제당 김성배 사장/“해외사업 성공 비결은 현지인 마음 얻는 것”
『세계경영의 핵심은 철저한 현지화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중심가 수드리만 거리에는 급속한 현대화를 상징하듯 수많은 초현대식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첨단 인텔리전트 기능을 갖춘 BRI빌딩 12층에 자리한 「제일―삼성 인도네시아」 사무실에서 제일제당의 현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성배(54) 사장을 만났다.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것만이 해외사업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제가 부임하자마자 빠수루안 공장에 5억원을 들여 이슬람사원을 지은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열대의 태양에 검게 그을린 김사장은 실패직전에 몰렸던 해외사업을 성공으로 되돌린 비결을 「현지밀착 경영」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김사장은 『2억이 넘는 인구에 세계최대의 자원보유국인 이곳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순식간에 세계시장을 휩쓸 것』이라고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김사장을 아직도 어리둥절케 하는 것은 현지와는 전혀 다른 국내 분위기. 김사장은 『이곳에서는 별다른 정치적 불안이 없는데도 한국에서는 무슨 큰 일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며 『국내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나돌때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320개의 국내업체가 영향을 받는다』고 걱정했다. 김사장은 또 『인도네시아는 크고 작은 1만3,677개의 섬과 200여 민족으로 이뤄진 다양한 사회』라며 『약간의 사회동요가 있을 수는 있지만 체제위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사장은 앞으로의 사업전망에 대해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내년초에는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에 액면가의 500%가 넘는 프리미엄을 받고 주식을 상장시킬 수 있으며 이 경우 5,000만달러가량의 주식발행 이익을 얻게될 것』이라고 장담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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