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 수사를 이제는 결단코 다시 해야겠다. 우리는 일찍이 사건기소 당시부터 검찰의 수사미진 및 축소혐의를 이유로 재수사를 주장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사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던 검찰마저 감춰뒀던 한보외압의 중요한 「몸체」 일부를 스스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놀라운 사태 전개 앞에서 재수사를 더 이상 주저할 명분이란 이제 사라졌다.검찰이 17일 한보사건 첫공판을 앞두고 황급히 발표한 한이헌 이석채 두 전 청와대경제수석의 6,900억원 대출외압 행사사실은 비록 그 개연성이 예견됐던 일이라 하더라도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우선 이들의 개입 사실 확인으로 한보사건의 성격 자체부터 완전히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신출신의 청와대 총무수석 및 국회의원 몇 명만이 뇌물을 받고 행사한 단순 외압의 실체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데 경제 문제에 관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공식 보좌하는 두 경제수석의 개입확인으로 이제 청와대가 동원된 정권 차원의 부정대출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의 성격이나 책임소재가 달라진다면 재수사를 통해 새로 규명하는게 상식일 것이다.
두번째 놀라움은 이런 엄청난 내용을 검찰이 어떤 의도로 감춰 왔겠느냐는 것 때문이다. 검찰은 어제 홍인길 의원이 법정에서 그런 내용을 진술할게 예상돼 미리 밝힌다고 했다지만 그 동안의 수사경과로 봐 그걸 믿을 사람은 없다.
결국 두 경제수석의 외압이 행사된 은행과 은행장 및 대출액수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걸 보면 검찰이 이미 그런 사실을 알아내고도 권력층과의 교감에 따라 축소를 기도해 온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증폭된다. 그러다 대통령사과와 당·정인책, 현철씨의 재소환 불가피 등 정치적 사정이 급변했고 홍의원의 법정진술도 더 이상 막을 길이 없어지자 서둘러 발뺌하려 했다는 짐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만일 검찰이 두 경제수석의 개입을 알고도 기소하거나 그 내용을 기소장에 밝히려 하지 않았다면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권력층에서까지 만약 그걸 지시했다면 법적 책임도 확산될 수 밖에 없기에 이런 의혹까지 함께 밝혀내기 위해서도 재수사가 불가피해진다 하겠다.
우리 검찰이 또 달리 국민적 비난을 사고있는 것은 한·이 두 전수석이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사법처리는 어렵다고 미리 못박고 있는 사실 때문이다. 검찰의 이런 주장속에는 그 동안의 축소수사 및 사실은폐를 정당화하려는 속셈이 감춰져 있는게 아니냐고 국민들은 지금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 스스로의 사과와 인책도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의 수사책임자까지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통치권은 이런 시점에까지 와서 한보재수사를 미루거나 검찰인책을 주저해서 얻을 게 무엇인지 사려깊은 통찰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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