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국 등 빗발항의에 바뇰레스시 “창고 보관” 굴복스페인 바뇰레스시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양손에 방패와 창을 각각 꼬나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키 135㎝의 작은 부시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금방이라도 창을 던지며 뛰어나올 것 같은 이 부시맨이 실제 인간의 박제임을 알게되면 충격으로 입을 다물수가 없다. 시 당국은 최근 유리관 속에 담겨 100년 가까이 전시돼 온 이 부시맨 박제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박제 부시맨의 고향은 현재 보츠와나에 속해 있는 지역. 1830년 두명의 프랑스인 탐험가들이 갓 매장한 시체를 파내 박제로 만들어 프랑스로 옮겨왔다.
부시맨을 신기한 동물쯤으로 생각한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다. 박제는 프랑스에서 전시돼다 1916년 바뇰레스시 박물관에 정착했다. 아프리카 남부에 거주하는 부시맨은 원어로는 산(San)족으로 불리며 작은 키, 옅은 피부색 등 다른 흑인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외양을 지니고 있다. 사냥에 능한 용맹한 부족이지만 백인과 인근 반투족에 의해 살상당하고 노예로 팔려가 현재는 5만명 정도만 남아있다.
박제 부시맨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고 비난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은 6년전 흑인 물리학자 알폰소 아세린(60) 박사에 의해서이다. 아이티 출신으로 바르셀로나 근처에 살고있는 그는 이 부시맨을 보고 말할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회로 세계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스페인정부 및 시당국에 항의를 계속했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때부터 외교경로를 통해 스페인 정부에 항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아세린 박사는 지난달 『박제 부시맨의 전시는 흑인이 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존엄성에 커다란 상처를 준 행위』라며 시 당국에 140만 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일관하던 바뇰레스 시당국은 아프리카국가들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한 스페인 외무부가 시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하자 비로소 입장을 바꿨다. 시장 비서실장 호안 폰스씨는 『박제를 전시관에서 창고로 옮겨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세린 박사는 이같은 조치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부시맨은 고향으로 돌아가 안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당국은 유네스코에 문의해 본 뒤에나 반환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때문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160여년간 구경거리가 돼온 부시맨 전사가 안식을 되찾는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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