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한 지 이제 넉달. 전문지식도 없이 이 일을 맡았을 때는 이 부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말로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기 골치 아픈 곳이야』라고 걱정을 해주어 책임의 막중함보다 「골칫거리」의 무거움이 더 느껴지기도 했다.하지만 보건복지부 업무의 다양함과 중요성에 날로 어깨가 무거워질수록, 어려운 만큼 재미가 생기고 신이 난다. 국민생활 구석구석 안 걸리는 데가 없고 국민들의 관심도 많고 목소리도 큰 곳, 그래서 그만큼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에 대해, 삶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얼마전 참석했던 「자연출생비 회복을 위한 대토론회」도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는 세상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어 있지만, 여성대 남성의 자연출생비가 100대 104인데 요즘 우리는 100대 115를 넘어서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여자짝을 갖지 못한 남학생이 한 반에 10여명씩이나 된다.
우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다음에 자라서 장가가기가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인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여성과 짝을 맺지 못하는 남성의 불만은 단지 성관계 범죄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불균형·부조화의 원인이 되어 광범위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2010년에는 신부·신랑감의 성비가 무려 100대 123이 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의 유교사상과 남성위주의 사회제도 속에서 남아를 바라는 부모의 「가난한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이를 많이 갖지않는 문화 속에 확률에만 의존하기에는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의술의 발달로 간단하게 남녀판별이 가능한 여건 아래서 아들을 선택하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탓하는 것은 매정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의 경우는 다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의술을 인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의술이 인간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자연의 도리에 순응해야 함을 뜻한다. 저 위대하고 오묘한 자연 앞에 인간은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남녀를 갈라 준 것에는 모든 남녀가 짝을 맞추어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라는 섭리가 숨어 있다. 의술은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지 순리를 거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연섭리를 경시하는 또하나의 장난이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자행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번지고 있다. 아직은 현실화 하지 않았지만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위해 사랑을 주었고 사랑의 결실로 생명을 되돌려 준다. 사랑은 둘로 갈라진 남녀가 하나의 생명체로 합쳐지는데 필요한 에너지이다. 사랑이 매개되지 않는 생명제조, 이것은 분명 자연의 섭리에 대한 거역이고 중대한 도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사랑을 부정하는 과학기술과 특히 의술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태아감별에 의한 성비파괴나 앞으로 혹시 개발될 지 모를 유전자 합성에 의한 인간복제, 곧 인간존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랑을 부정하는 행위와 기술은 자연과 인간의 이름으로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업무도 이제 단순한 서비스차원이 아니라 산업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이 적극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복지사회를 이룩하는 길, 그 길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이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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