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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윤영수 중편(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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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윤영수 중편(소설평)

입력
1997.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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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찡한 장애인 일생한 뇌성마비환자의 짧은 일생을 서술한 윤영수의 중편 「착한 사람 문성현」(창작과비평 봄호)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엽기적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나 이미지의 황홀경에 탐닉하는 독자라면 이 허구적 인물전을 지루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형식면에서나 소재면에서나 「착한 사람…」은 확실히 소박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사적 곡예술의 흥겨움과 감각적 도취의 즐거움을 모두 합쳐도 도저히 따르지 못할,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감동은 물론 문성현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서울의 한 양반가에 장손으로 태어났으나 뇌성마비에 걸려 불구의 몸으로 생애를 시작한다. 39년에 걸친 그의 이야기에서는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흉물스럽게 의식하며 연명해야하는 불구자의 괴로운 신음과 한맺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가 생에 대해 저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헌신적인 사랑을 기억함으로써, 그리고 살아있음의 환희를 깨달음으로써 생에 대한 비범한 긍정으로 나아간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묻는 실존적 물음과 끊임없이 대면하다가 사람에 대한 신뢰 속에 죽음을 맞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거룩하리만큼 숭고한 인간으로 자신을 완성한다.

사람 구실 못하면서도 누구보다 사람답게 살다갔다는 역설…. 이것이 「착한 사람 문성현」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뇌성마비환자의 미묘한 심리적 추이를 그려낸 윤영수의 솜씨는 아무리 상찬해도 아깝지 않다. 운명의 악의에 희생된 사람이 오히려 선의의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최루성 미담에 그칠 위험이 다분한 것이지만, 윤영수의 뛰어난 재능 덕택에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케하는 소설적 추궁으로 격상되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말을 아껴가며 정확히 구사한 문체이다. 그 검약한 문체는 이야기가 감상에 젖지 않도록 거머쥐고 그 절정의 벽력같은 울림을 준비하며 침착하게 나아간다.

짐작컨데, 문성현의 전기를 쓰기로 작정한 작가의 마음은 울분에 사무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중 인물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서도 인간같지 않은 종자가 하나둘이』 아닌 세상에 대한 울분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도덕적 열정을 요란하게 토로하는 대신에 사람다움의 통념을 반성하게 만드는 인간상 하나를 그려냈다. 이 것 또한 예사롭지 않은 작가적 지혜이다.<황종연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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