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쓸이·보신’ 여전하고 스키·골프여행 늘 만원/96년 여행적자 26억불여행과 취미, 레저 등 문화생활에도 과소비가 깊숙히 침투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때 갑작스럽게 해외출장을 가려면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곤 한다. 이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학연수 효도관광 배낭여행 골프여행 스키여행 등 갖가지 명목으로 해외에 나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는 전년보다 21.7%가 늘어난 465만여명. 단순계산으로는 전국민의 10%가 해외에 나간 셈이다. 반면 외국인 입국자는 지난해부터 줄기 시작, 내국인 출국자보다 100만여명이 적었다.
일부 부유층에 국한됐던 골프나 스키 등의 고급 취미생활이 점차 대중화하면서 해외로 골프·스키 여행을 나가는 인구도 나날이 늘고 있다. 관세청이 골프여행자에 대한 통관검사를 강화하고 세무당국에 명단을 통보한다는 엄포를 놓을 정도로 골프여행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상태다.
지난해 골프채를 들고 외국에 나간 골프여행객은 월 3,300명꼴인 3만9,500여명. 올 1월에는 무려 6,085명이 골프가방을 들고 나갔다. 당국의 엄포 이후인 2월에는 많이 줄어 1,565명이었다. 그러나 골프채를 현지에서 빌려 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골프여행객은 줄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여행사 관계자들의 얘기다. 골프여행 상품만을 파는 전문여행사마저 등장했다. 지난 겨울에는 120만원 정도가 드는 4박5일 일정의 캐나다 스키여행이 붐을 이루어 여행사들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해외여행중의 소비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싹쓸이 쇼핑이나 보신관광이 근절되지 않고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올 1월 호주에 휴가여행을 다녀온 회사원 P(30)씨는 말로만 듣던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의 싹쓸이 쇼핑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지방 친목계원들로 보이는 40대 주부들이 80만원이 넘는 양털이불 1, 2채씩과 40만∼100만원의 무스탕 2, 3벌씩을 구입, 김포공항에서 물건을 찾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그 결과 관광수입은 주는 대신 관광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관광수입은 전년보다 3% 줄어든 54억1,900만달러, 지출은 18% 늘어난 69억6,300만달러였다.
방학때는 관광을 겸한 어학연수가 극에 달한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어학연수생이 많이 줄었다는 지난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도 초·중등학생의 해외여행과 어학연수는 끊이지 않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초·중등학생 나이인 6∼15세 출국자는 지난해 6월 한달 4,427명이었다. 그러나 방학기간인 7, 8월에는 각각 5만301명, 4만8,782명이었다. 지난 겨울방학때도 7만5,000여명의 초·중등학생이 출국했다.
지난해 유학·연수비용을 포함한 여행수지 적자는 26억달러에 이르러 전체 경상수지 적자 237억 달러의 큰 요인이 됐다. 초·중등학생의 어학연수는 3주과정에 하루 2, 3시간씩 영어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관광프로그램으로 메워진다. H여행사 L대리는 『어학연수에는 250만원 이상이 필요한데도 초등학교의 영어수업을 앞둔 탓인지 부모들이 못보내 안달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벤트 업체도 앞다퉈 해외 연예인 초청공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외국 연예인을 초청하는 데 들어간 개런티만 전년보다 600만달러가 늘어난 1,650만달러였다. 외국 연예인 초청시 이면계약을 하는 관행으로 보아 실제 지불액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이진동 기자>이진동>
◎호화결혼 못고치나/빚얻어서 수천만원씩 써도 신혼부부 혼수갈등 37%나
지난해 10월 결혼한 K(28·서울 사당동)씨는 결혼을 앞두고 예단 때문에 며칠동안 고심했다. K씨의 부모도 처음 치르는 혼례여서 어느 정도를 해야하는지 친지들에게 물어 보아야 했다. 『요즘엔 대개 현금으로 보낸다는 귀띔이었어요. 하지만 얼마를 보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시댁에서도 신경을 쓰는 눈치고 친정 체면도 있고 해서 부족하지 않게 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민끝에 K씨가 결정한 예단 금액은 전체 결혼비용 7,000만원의 17%정도인 1,200만원. 예단비용이 늘어 전체 결혼비용도 예상보다 많아졌다. 얼마후 시댁에서도 700만원을 보내 왔다. 『요즘은 대개 남자와 여자 집안이 5대 3 비율로 예단 금액을 정한다고 해요. 같은해 결혼한 친구들보다 많은 지출을 했지만 시어머니 밍크코트를 빠뜨려 결국 싫은 소리를 듣고 말았어요』
오는 4월에 결혼하는 예비신부 L(25)씨는 예식장 계약에 가장 많은 지출을 했다. 300명 가량의 하객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예식장을 예약했다. 기본항목인 뷔페식 식사를 비롯, 옵션으로 꽃길과 3단케익 등을 계약하고 1,000만원을 지불했다. 신부화장이나 웨딩드레스, 비디오촬영 등은 별도로 계약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호텔이나 63빌딩에서 할 형편은 못되지만 일반 예식장에서 콩볶듯이 결혼식을 올리기는 싫어요. 일생에 한 번인데 돈이 좀 들더라도 여유있게 치르고 싶어서 무리를 했어요』
최근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결혼한지 1년 미만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비용 지출실태 및 의식조사」 결과는 결혼비용을 둘러싼 예비부부들의 고민을 잘 보여주었다. 전체의 50.5%가 『결혼비용이 가계에 부담이 됐다』고 응답했고 『당초계획보다 초과지출했다』는 사람도 42%에 달했다. 또 부족한 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빌린 사람도 15.3%나 됐다. 초과지출 이유로는 23.5%가 「준비과정에서의 욕심」, 8.8%가 「주위의 이목 및 사회적 관습」을 들어 3명중 1명이 비합리적 요인의 초과지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혼수부족이 결혼후 갈등을 일으킨다는 인식도 혼수 과소비의 한 원인으로 나타났다. 혼수문제로 심적갈등을 겪거나 불편함을 느낀 사람도 전체의 36.9%나 됐다. 이백수 변호사는 『많은 혼수를 해가는 여성도 혼수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파경에 이르는 예가 흔하다』며 『능력에 맞는 적절한 혼수를 준비해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어린이 눈에 비친 과소비/“우편함에 편지는 없고 카드청구서만 꽉찼어요”
『어른들 과소비 때문에 아이들까지 망가지잖아요』
이달초 인간성회복운동 추진협의회(대표 고진광)가 과소비를 주제로 공모한 어린이들의 글짓기 응모작에는 어른들의 과소비 실태가 적나라하게 지적돼 있다. 어린이들은 자기들 사이에 퍼진 과소비 풍조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그릇된 소비행태에서 비롯했다고 보고 있다.
서울 신흥초등학교 5학년 L양은 고급차 대형 냉장고 모피코트 등을 마구 사들이는 이웃집 아저씨의 과소비 사례를 들어 『생각없이 긁어 대는 카드 때문에 그 아저씨네 우편함에는 편지라고는 안 보이고 카드대금 청구서만 가득 담겨 있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소비가 아닌 절약』이라고 꼬집었다. 같은반 S군은 『백화점 바겐세일이라고 해서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사재기하는 정신이 병든 어른들이 많다』고 질타했다. M양은 『친구들 가운데 엄마가 필통 공책 등 학용품을 한꺼번에 사다 줘 쓰다가 버린 학용품이 집에 굴러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며 『어른들의 과소비 때문에 아이들까지 망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명 메이커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일도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학교 5학년의 한 어린이는 이렇게 썼다.
『요즘 어른들은 너무 과소비를 하는 것 같다. 우리같은 아이들이 보고 배우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3층집에 살던 ××네는 차가 한대만 있어도 될 것 같은데 3대나 있다. 일요일에 세차할 때 보면 물도 꽤 많이 낭비한다. 꼭 애들처럼 서로 자기가 먼저 한다고 야단이다. 또 ××라는 아이 집은 냉장고를 산지 얼마 안됐는데 고장이 났다며 더 큰 냉장고를 샀다. 그렇지만 냉장고 안은 반도 안 차 있다. 그런데도 냉장고 문은 필요없이 열고 닫으며 괜히 물건을 꺼냈다가 넣곤 한다.
우리집 과소비도 만만하지 않다. 아빠는 핸드폰이 있는데도 신제품을 샀다. 그래서 전에 쓰던 것은 집에 놓아 두고 다니신다. 이해가 안 간다. 이전의 핸드폰도 소리가 잘 들리고 기능도 좋았는데 말이다. 정말 애들처럼 금방 싫증내는 것 같다. ××네 집이 이사를 갈 때다. 침대 장롱 책상 의자를 버리고 갔다. 새것처럼 깨끗한 것들인데도 말이다. 쓸만한 것들을 놔 두고 왜 다시 새로 살까. 정말 궁금하다. ××네 뿐만이 아니라 다른집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버리고 새것을 사 간다.
우리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새로 사 달라고 한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꾸중을 하신다. 요즘 집안사정이 어쩌고 저쩌고…. 우리에겐 무엇이든지 안된다고만 하시며 성적에만 관심있는 부모님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어른들 멋대로 사고 버리고 낭비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짐한다. 어른들처럼 절대 과소비를 하지 않겠다고』<이진동 기자>이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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