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의 지도부가 자민련과 대통령 후보단일화를 위해 15대 국회 임기내에 내각제로의 개헌방침을 굳혔다는 소식이다. 창당이래 내세워 왔던 대통령 중심제 당론을 하루 아침에 바꾸겠다는 의도다. 국민회의가 갑자기 「내각제도 대통령중심제도 모두 민주제도」 운운하는 것도 어색할 뿐더러 헌법개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기껏 야권공조와 공동집권이라니 어이없기 짝이 없다.국민회의가 대통령중심제를 당책으로 삼고 있음은 공지의 일이며 특히 김대중 총재는 이를 지키고 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왔다. 과거 암울했던 1980년대 후반 전두환정권이 내각제 개헌을 제기했을 때 김총재는 야당분열책동이라며 대통령 직선제를 강력히 옹호했다. 작년 4·11총선기간에는 김영삼정권이 계속 집권을 위해 내각제 개헌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을 밀어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는가.
그토록 내각제를 반대하던 김총재가 총선이후 슬슬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즉 내각제를 당책으로 내세운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야권공조를 하면서 「내각제도 통일을 이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결국 16대 국회에 가면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고까지 얘기했던 것이다.
이번 국민회의의 주류인 김총재측이 내각제 개헌론을 굳힌 이유는 우선 약속위반에 따른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김총재를 야권단일후보로 내세우겠다는 것이 제1의 목표다. 나아가 인천·수원 보선에서의 압승여세를 이용, 야권공조를 튼튼히 하고 「내각제를 수용하면 여당과도 손을 잡겠다」며 저울질하는 김종필 총재를 확실히 잡겠다는 의도로 엿보인다.
그러나 국민회의나 김총재는 우리 국민들이 개헌 노이로제에 걸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49년간의 헌정기간중 무려 9차례나 개헌을 했고 그중 87년의 여야 합의 개헌 등을 제외하고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 등 대부분이 정권연장과 권력장악을 위한 것이어서 개헌하면 속셈을 의심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더구나 수십년간 대통령중심제를 지지하다가 후보단일화, 즉 대권에 네번째 도전하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자민련에 약속할 때 어떻게 볼 것인가는 뻔하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요 큰법(대법)이다. 이를 국가와 민주발전, 국민의 기본권 신장 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의 목표달성을 위해 손질하려는 인상을 줄 경우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김총재와 국민회의가 내각제 개헌을 하려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당내에서 공론화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런뒤 국민에게 사과와 함께 당당한 논지를 들어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꿔야 하겠다는 설명을 하고 또 납득시켜야 한다.
국민들은 헌법이 더 이상 특정인과 특정정치세력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손질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