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 시작되고 있다.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졸업과 진학, 그리고 입학시즌이 되어서인지 들뜨고 분주해진다. 세계 신기록이라 할 정도로 높은 교육열을 지닌 한국의 고학력 부모들은 자녀가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가문을 대를 이어 빛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 못한 학부모들은 그들이 성취하지 못한 한을 자녀를 통해 이루어 대리만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어찌보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자녀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민의 근면함이 견인차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면의 열강들 틈에 끼여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탁월한 인적자원 덕택이었다. 마치 이스라엘이 교육의 힘을 중시하듯 후손을 잘 가르쳐서 국가에 이바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 학력지상주의가 팽배해서인지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뚫고 나면 마치 대학을 졸업하고 보장된 직장에 들어가는 프리미엄이라도 획득한 양 착각하고, 이제까지 용광로처럼 들끓던 향학열이 하루 아침에 식어버리는 점이다. 더욱 난해한 것은 그러한 그릇된 관습을 우리가 쉽게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미팅은 당연한 통과의례이며 친목도모라는 미명 하에 냉면사발로 소주나 마시게 하고, 또 일부이겠지만 패션모델처럼 외모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사실 대학가가 온갖 술집과 옷가게 등 유행의 서식처, 퇴폐와 과소비의 온상이 되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시바삐 대학당국과 교수들은 이 나라 대학이 바로 서도록 분연히 일어서 깨우쳐 줘야한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초·중·고교 주변만 면학분위기가 중시되며 대학은 사각지대일 수 있는가.
대학이 바로 서면 세상에 아무리 부정과 비리와 불신이 판을 친다 해도 곧 이 나라는 반듯해질 수 있다. 대학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이어지는 인생의 황금같은 시기이며 대학 4년은 이후 40년의 인생을 풀어나가야 할 기량을 닦는 긴요한 시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학 1년은 사회생활 10년과 맞먹는다. 세월은 흘러가고, 삶은 언젠가 덧없이 마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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