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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 2년/차범근 국가대표축구팀 감독(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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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 2년/차범근 국가대표축구팀 감독(1000자 춘추)

입력
1997.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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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의 백수생활동안, 나처럼 많은 것을 배운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동안 내가 겪었던 불쾌한 사건들의 배경은 「우리 사회가 너무 썩어있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물론 아직까지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저게 칭찬인지, 아니면 무엇을 바라는 냄새인지를 구분하지 못해 애를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현대를 그만두고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전학시켰는데 운동을 하는 딸아이의 선생님이 『점퍼를 싸게 샀으면 좋겠다』고 했다. 순진한 나는 『내가 사면 40∼50%쯤 싸게 살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분위기가 영 그게 아니었다.

한마디로 『사게 해달라』는 얘기는 관계에 따라 『사달라』는 말로 통하고 있었다. 거꾸로 내가 감독일 때에도 내가 무엇을 『사오라』고 시키면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해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그뿐 아니다. 새로 선수가 우리 팀으로 오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 선수의 생활을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전세비를 먼저 내 돈으로 대주고 절차를 밟아 내가 구단에서 되돌려 받은 적이 더러 있는데,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가 보통 기분 나쁜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선수들이 올 때는 구단으로부터 돈을 받기때문에 그 사이에서 차감독도 「좋은 일」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보편화해버린 상식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한푼이라도 더 아껴보려고 자신의 호주머니돈보다 회사돈을 더 절약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것 역시 사회가 예외가 없을 정도로 넓게 썩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덜 입고 덜 쓰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지혜, 비굴함을 묻힌 풍요보다는 소박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지키면서 어깨를 펴고사는 평범한 지혜가 요즘에는 산소처럼 느껴진다. 세상 공기가 언제쯤 맑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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