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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과 경쟁력/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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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과 경쟁력/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입력
1997.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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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학점따고 졸업/위험한 사고 대학 만연/인재 아닌 일꾼만 양산/기업경쟁력 쇠퇴 당연늘 이맘때면 오가며 마주치는 새로운 얼굴들로 학교는 활기에 넘친다. 희망에 부푼 신입생들의 표정은 우리에게 대학교육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대학은 그 나라의 지식의 보고이며, 기술의 산실이다. 따라서 대학의 모습은 한 국가가 가진 지식과 기술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옛말도 있듯 요즈음의 화두인 경쟁력 제고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 대학의 모습을 정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학 입학에 관해 우리 사회와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면면은 어떠한가. 모두들 일단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유의 생각에 젖어있다.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졸업은 떼어논 당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점 얻기 까다로운 강의는 피하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려 하기보다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심지어 입에까지 떠 넣어주는 강의만을 쫓아다닌다. 편안하게 학점을 채우고 적당히 졸업할 궁리만 하는 듯 하고, 한 나라의 엘리트로서의 지적 도전의식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일단 들어가는데 목적을 두는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입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들어가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기업 입사시에도 작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업의 개개인이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도전적인 과업은 피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 수준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요령껏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가면 직급과 임금이 저절로 높아지는데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려는 도전적인 인재가 길러질 수 없다. 간혹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모난 돌 취급받기 일쑤이다.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학생들이 가득한 대학의 도서관을 살펴보자. 많은 학생들이 몰두하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고시나 취직시험 준비이다. 시험 때가 아닌데 전공 공부를 하거나, 지식인으로서의 교양을 쌓기위한 독서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찾아보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사회인력을 양성하고 보다 심도있는 학문의 저변을 마련한다는 대학 교육의 취지는 매장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학문의 정진을 통해 문제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밤늦게까지 남아 고시용 준비서나 취업준비서를 열심히 외우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지금 우리 기업들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기업의 인력들은 참으로 열심히 일한다. 밤늦도록 퇴근도 못하고 무엇인가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주어진 가이드 라인대로 머리 속에 차곡차곡 채워넣는 입학시험과 취직시험 준비 속에 굳어져 버린 머리로는 시키는대로만 일할 수 있어도 다행이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과업 수행을 위한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은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일할 뿐이다. 대학교육이 초·중·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뿐,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인재들을 길러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 교육도 양적인 성장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데 있어 근시안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며 그때 그때의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급급했다.

이제는 눈을 돌려 대학의 존재 목적과 기능을 재정립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학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양성할 때, 진정한 경쟁력 제고의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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