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추상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이응로(1904∼1989), 송영수(1930∼1970), 전성우(63·서울 보성고 이사장)씨의 작품이 한 자리에서 만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사간동으로 이전한 그로리치화랑(대표 조희영, 02―720―5907)은 5∼20일 한국화, 조각, 양화분야에서 광복이후 대표적인 추상작가로 평가받는 3명을 조명하는 첫 전시를 마련한다.이들은 추상이라는 단어도 낯설던 시절에 전위적 작품을 발표, 미술학도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했다. 특히 이응로씨는 문자추상이라는 독특한 화풍으로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고,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송씨는 철조각으로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유일한 현역작가인 전씨는 「만다라」연작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번 전시는 당시 서울대 서양화과학생이었던 조희영씨가 감명을 받았던 이응로씨와 두 스승의 빛나는 화업을 되돌아 보기 위해 준비한 자리이다.
이응로씨의 작품은 문자추상 등장 직전인 60년대 초반의 수묵작업과 종이콜라주. 캔버스 위에 신문지와 잡지를 찢어 붙이고 먹물을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곁들인 작품들은 전통산수화의 이미지를 추상적 형상으로 바꿔놓는다. 뿌려진 먹물과 휘갈긴 선, 마티에르 등이 빚어내는 형상은 산이나 나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오랜 세월의 이끼가 가득찬 고대벽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화재 수집가인 고 간송 전형필의 차남인 전씨는 50년대초 미국에서 동양적 감성과 신비를 표현한 「만다라」연작으로 잭슨 폴록, 클라인 등과 함께 미국추상화단을 대표하는 10명에 선정될 만큼 주목받았다. 불교의 종파인 밀교의 세계관을 담은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유채를 사용하지만 세밀하고 찬란한 색채묘사로 화선지 위에 먹물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71년 서울대 교수에서 보성고 교장으로 옮기면서 작품발표를 중단한 그는 95년 가나화랑 개인전을 계기로 활동을 재개했다. 올해에는 미국 짐멀리미술관이 주최하는 순회전 「전통과 현대적 표현」에 참가한다.
철조각 선구자로 꼽히는 송씨의 작품은 고도의 압축과 정확한 비례로 식물의 형상을 추상화했다.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만든 판조각과 버려진 파이프 등을 재료로 한 「토템」 「영광」 등은 존재의 긴장과 불안, 새로운 삶을 향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전시를 기획한 조씨는 『장르가 다른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추상미술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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