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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온정리 풍경’(대표작을 찾아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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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온정리 풍경’(대표작을 찾아서:6)

입력
1997.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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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정신 가득한 41년 외금강 겨울/원근·명암법 틀 벗은 법학도 시절에 그린 작품/73년 남북교류 때맞춰 공개/실향민 가슴설레게 하기도일제가 진주만을 기습,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1941년 겨울, 최고 엘리트로 꼽히던 경성제국대 법대생 한 명이 화구를 메고 금강산 온정리역에 내렸다. 대학의 첫 겨울방학을 맞아 금강산 풍경을 그리기 위해 온 화가지망생 이대원이었다. 그는 역 근처 여관에 여장을 풀고 외금강에 오르려고 했으나 폭설 직후라 산행이 불가능했다. 몇 달 별러온 금강산 스케치를 포기할 수 없어 역광장에서 외금강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매서운 바람에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스케치한 작품이 바로 「온정리 풍경」이다.

이 작품은 이대원(76) 화백이 법전 대신 미술서적을 뒤적이며 실험적 화풍을 시도했던 습작시절의 대표작이다. 경복중 미술반에서 활동하던 38∼40년 선전에서 잇달아 입선, 대가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던 그는 부친의 강력한 권유로 법대에 들어가긴 했으나 법학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는 『모처럼 집안 눈치를 보지않은 상황에서 서양화의 절대원칙으로 여겨졌던 원근법과 명암법까지 무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이 작품을 회고했다.

멀리 외금강 윤곽을 굵은 선으로 단순화하고 가까운 대상을 희미하게 처리한 이 작품은 단조롭고 어두운 색채배합으로 우울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짧고 힘있는 선을 능숙하게 구사한 필법은 60년대 이후 그의 작품에 투영된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그림에 담긴 온정리 역주변 풍경도 재미있다. 역광장 주위의 일본식 가옥 앞에 한복 차림의 행상들이 늘어서 있는 장면은 40년대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온정리 풍경」은 73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전」에 공개되면서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상황에서 전시된 이 그림은 실향민의 추억을 되살려주면서 고향방문의 꿈을 꾸게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이화백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기도 했다.

이화백은 56, 57년 미국과 유럽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양화기법을 연구하고 65년에는 심산 노수현 화백에게 한국화필법을 사사한 후 독창적 화풍을 정립했다. 과수원, 산, 연못, 농장 등이 일관되게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자연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홍익대 총장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95년 미술의해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이제 평범한 화가로 되돌아왔다. 60년 넘게 살고있는 서울 혜화동집과 부친이 일궈 놓은 경기 파주 과수원, 홍익대 근처 작업실 등 세곳을 오가며 그동안 밀쳐두었던 그림을 바쁘게 손질하며 내년의 희수 기념전을 준비하고 있다.<최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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