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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후 은행들 몸사리기/「준법대출」에 기업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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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후 은행들 몸사리기/「준법대출」에 기업 비명

입력
1997.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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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지원자금 5조 금고 낮잠/한보어음 몰려들 5월 “위기설”/현실과 동떨어진 대출규정 준수/“내가 다치면 당신이 책임지겠나”은행의 「준법투쟁」으로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금융계와 업계에 「5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3일 금융계와 업계에 따르면 은행 임직원들은 『대출할때 규정을 지킬 수 밖에 없다』며 신용대출을 기피하고 있고 담보대출시에도 추가담보를 요구, 관련기업들이 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이같은 「준법투쟁」이 거의 모든 은행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준법투쟁」이 계속될 경우 한계기업의 무더기 도산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보철강이 부도직전에 발행한 어음의 만기가 5월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일반기업체의 자금수요가 5월에 몰릴 것으로 보여 금융권의 「준법투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많은 기업체들이 5월에 큰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은행의 「준법투쟁」으로 어음부도율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결제원이 공식발표하는 어음부도율은 한보사태가 일어나기전인 지난해 12월 0.19%에서 한보사태가 터진 1월에는 0.21%로 높아졌고 2월에는 0.3%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자금성수기인 3월을 고비로 4, 5월에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준법투쟁」의 결과 은행금고안에는 통화당국이 중소기업부도를 막기위해 풀어놓은 5조원의 자금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도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돈냄새조차 맡지 못하고 있다.

경기 안양시의 중소건설업체인 A사는 농협직원들의 준법투쟁으로 회사가 문 닫을 위기에 빠졌다. A사는 한보철강에서 받은 2억원의 어음을 농협에서 할인받았는데 부도이후 할인어음에 대한 상환압력을 받고 있다. 이 회사 K사장은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하는데 거꾸로 자금의 상환을 요구하는게 무슨 일이냐』고 항의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농협직원은 『내가 다치면 당신이 책임지겠느냐』는 말만을 되풀이, K사장은 별 수 없이 기한을 연장받는 대가로 자신이 갖고있는 빌딩에 대한 「포기각서」를 농협에 넘겨줘야 했다.

이미 대출을 약속받았던 자금이 대출되지 않거나 담보규모가 터무니없이 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경남 울산의 철구조물 제작업체인 C사는 시가 1백20억원의 땅을 담보로 제공하고도 40억원밖에 대출받지 못했다. C회사의 P사장은 『그동안 대출액은 담보가격의 1백20%정도에서 결정됐는데 한보사태이후 이 비율이 50%이하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사례도 늘고 있다. 설비자재공급업체로 매출액이 연 2백억원인 대전의 E사는 은행에 자금이 있는데도 사채를 사용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의 대가로 묶어놓은 구속성예금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사는 지난달 회사로 돌아온 2억5천만원의 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은행예금 3억원대신 사채를 빌려와야 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한보사태로 은행원들이 준법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건설이나 철구조물 업종 등의 한계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 은행원은 『우리도 무엇이 문제인줄은 잘 알고 있지만 한보철강의 경우처럼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은행원이 책임지는 것 아니냐』며 『대출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치든지 금융기관에 대한 사정기준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한보사태로 은행장이 줄줄이 구속되고 관련임직원들에 대한 문책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사정을 고려해 대출했다가는 언제 봉변당할지 모른다』며 『은행원들의 「준법투쟁」을 저지할 명분도 없어졌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털어놨다.<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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