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도시는 「다양함 속의 단조로움」을 보여준다. 건물의 외관, 거리의 자동차, 가로 세로로 뻗은 업소 간판의 모습이 다양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라면 그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모습은 같은 색깔의 피부, 같은 모양의 바지, 티셔츠, 구두, 가방으로 인해 단조롭다는 말이 어울린다.지금은 익숙해져서 한번 본 학생이라도 자신있게 알아볼 정도의 실력이 되었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학생들 얼굴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 상당한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다. 조상의 다양한 인종 구성으로 한 가족도 피부색깔이 여러가지인 중남미인의 모습에 익숙한 나의 눈에는 한국인의 모습이 한가지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든 유행은 있기 마련이다. 유행은 외모의 치장에 그치지 않고 가전제품, 자동차, 심지어는 창작과 학문의 세계에도 있다. 구미의 포스트 모더니즘 열풍이 한국예술에도 유행(?)처럼 퍼졌고 한국어 연구에 변형생성문법적 분석이 활발히 적용되었다. 물론 이 때는 경향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그거야 유행이란 말을 좀 멋있게 포장한 것 아니겠는가?
유행을 외면하다 보면 「구태의연하다」 「시대에 뒤졌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젊은 사람일수록 유행의 첨단을 걷는 것은 어느 곳이나 똑같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여건, 환경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사실 젊은이가 자신이 속한 사회환경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젊은이 되기를 포기한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주변에 대한 불만은 남의 것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며, 이는 남의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방으로 이어진다. 금발, 갈색으로 머리를 물들이는 데는 검은 머리 일색인 한국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아주 매력적인 작은 눈과 아담한 체형이 불만이다 보니, 커다란 눈으로 수술하고 키 크는 호르몬 투여까지 하는 것이다.
반면 서구사회에서는 곱슬머리 대신에 직선으로 뻗은 머리로 치장하고 검은 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보면 어느 곳의 젊은이든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행은 이제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다. 각국의 차이점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행을 따르느냐, 혹은 그 유행이 각국의 현실, 한국 같으면 한국적인 요소에 의해 변형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이다. 유행을 수출하는 나라들의 거리는 다양하다. 힙합바지와 통이 좁은 바지가 함께 걷는 것이 이 거리들의 모습이다. 한국인은 「혼자 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초콜릿 색깔의 립스틱이 유행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그 립스틱으로 단장을 한다. 한때 세계 젊은이들의 티셔츠가 온통 구호로 채워진 적이 있었다. 뜻도 야릇하고, 철자법도 틀리는 영어구호 대신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로 멋진 시구를 적었더라면 같은 유행이라도 더 독창적이지 않았을까. 세계무대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유행품을 보게되는 것은 과연 언제쯤일까?<한국외대 교수·페루인>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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