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관광명소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25일부터 금속탐지기가 설치됐다. 이제 이곳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은 무기나 폭발물 소지여부를 가리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입장권 매표소에서부터 늘어서는 줄은 86층 전망대에 오르기까지 더 길게 느껴질 것이고 배낭이나 가방을 든 사람들은 전에 없던 번거로움을 겪게 됐다. 전망대의 금속탐지기는 사실 지난 93년 월드 트레이드 센터 폭파테러사건 이후 테러 공포 속에 잠시 설치돼 운용된 적이 있었지만, 뉴욕명물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넉달만에 철거되고 말았다.금속탐지기가 다시 부활된 것은 지난 23일 하오 전망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기에는 한 정신이상자의 돌발행동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이 사건은 그러나, 뉴욕시민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한가로운 일요일 석양 빌딩숲의 스카이 라인을 즐기던 관광객들은 69세의 팔레스타인 노인이 무차별로 발사한 총에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총에 맞은 7명의 관광객 중 덴마크인 청년 한명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즉사했고 범인도 그자리에서 자신의 총으로 자살했다.
사건이 주는 문제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가질 테러공포, 미국의 상징물인 빌딩의 안전보안 관리, 뉴욕의 이미지에 보태질 또하나의 악명, 뉴욕관광업에 미칠 타격…. 워싱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모금스캔들이 피치를 올리는 동안에도 뉴욕시민들이 이 사건의 충격과 후유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날 이후 연일 1면과 사회면 3∼4쪽을 이 사건 기사로 도배질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보게되는 뉴욕 시민정신의 한 단면이다. 가령 언론의 사건보도는 대서특필이라 할만한 비중을 두고 있지만 방향은 매우 주도면밀한 느낌을 준다. 피해자들의 휴먼스토리를 크게 다루면서 사건의 문제점에 대한 정면취급을 삼가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관광객들의 입을 통해 이번 사건이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는 세상사 중 하나일 뿐이라는 내용의 스케치를 계속 싣는 식이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범인이 외국인신분으로 권총을 플로리다주에서 정식구입했음을 들어 『사건의 핵심은 미국의 총기관리 문제』라고 초점을 흐리고 나선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의 재빠른 언변에 편을 들어주고 있다. 사건으로 인해 뉴욕시가 입을 상처가 최소에 그치도록 하자는 시민적 합의가 깔려 있다는 느낌은 신문을 찬찬히 살피면서 갖게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뉴욕시민들이 뉴욕을 얼마나 어떻게 아끼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애향심 혹은 애국심이라는 단어는 때로 고답적이고 케케묵은 인상을 풍기는, 재미없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끝없는 난국으로 자조감에 젖어 있는 우리의 자화상은 뉴욕시민들의 애향심을 값진 것으로 보이게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