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Le Point 2월22일자북한 주체사상의 창안자이며 오랜 세월 사상의 수호자였던 황장엽은 74세의 나이에 생각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구원의 길? 혹은 도망? 이 북한 고위관리는 베이징(북경)의 한국대사관에 피신함으로써 북한에 대지진을 일으켰다.
북한의 개방약속은 무산될지도 모른다. 북한이 피를 나눈 형제이자 적인 한국에 제시한 평화공존의 약속도 끝장날지 모르는 위기에 도달했다.
2,000만명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있는 북한 김정일 정권은 빈사상태에 있다. 북한정권은 마지막 참호로 몰릴 때면 더없이 공격적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전쟁의 열쇠를 쥔 것이 일반 시민들하고는 거리가 먼 한 사람인만큼 더욱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원기가 넘치는 얼굴, 알 수 없는 묘한 시선의 황장엽은 북한 정권 막후의 실력자였다. 옛 지도자인 김일성이 국민들을 착취하는 구실이 되어주었던 자족이론, 즉 주체사상을 만든 것이 황이다. 망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르크시즘의 규범보다는 코냑과 여자, 스포츠카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경애하는 지도자」의 아들 김정일의 개인 숭배를 퍼뜨린 것도 그다. 그는 또 북한의 고립을 지지해 예전의 「은둔왕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왜 망명했을까. 우선 그는 94년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사망이후 급성장한 젊은 급진파들의 공작으로 김정일의 신임을 잃어 숙청 위험에 처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자급자족에 입각한 자신의 정책이 내포한 위험을 비로소 깨닫게 됐을지도 모른다. 끝으로 공식발표에 의하면 150억달러(약 13조원)의 피해를 일으켰다는 2년 연속 대홍수로 북한이 전무후무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인권단체 임원과 서방세계의 특사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수십만명의 농민들이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식물뿌리를 찾아 공원 땅을 파헤친다.
모든 망명을 변절로 생각하는 김정일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은 주민들을 전방으로 내몰 수도 있다.
비록 평양이 식량원조에 대한 대가로 망명에 관한 협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옛 스승의 망명에 대해 김정일은 『떠나고 싶은 겁쟁이들은 떠나라』고 말했다. 이는 71년 마오쩌둥(모택동)의 지정 승계자인 린파오(림표) 원수의 배반과 비슷한 것이다. 어쨌든 황의 망명은 전쟁 지지자들에게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망명자들에 따르면 지구상 마지막 스탈린주의자들의 보루인 이 「노동자들의 천국」은 이미 통치의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비밀로 숨기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황은 선택을 했다. 명예를 잃은 아첨꾼의 슬픈 종말보다는 망명자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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