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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아이들/어디서 어떻게 지내나­현장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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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아이들/어디서 어떻게 지내나­현장르포

입력
1997.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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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화양동·천호동…/유흥가는 가출 10대의 천국/1평 남짓 벌집서 낮잠을 자고 해가 지면 출근을 한다/여자애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 남자애들은 ‘삐끼’로…/‘주유소 총잡이’‘철가방’ 등 할 일도 많고 갈곳도 많아/한 학급 3∼5자리는 늘 비어 있다는데…서울 금천구 가리봉동, 광진구 화양동, 성북구 돈암동, 서초구 방배동, 서대문구 신촌, 강동구 천호동 등지의 유흥가는 가출한 10대들의 천국이다. 80년대 구로공단 공원들이 둥지를 틀었던 가리봉동 일대의 「벌집」은 이제 집을 나와 유흥업소에 나가는 10대들이 차지했다. 2, 3층 양옥집에 1.5평 남짓한 방이 20∼30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에서 이들은 때로는 친구끼리, 때로는 남녀가 섞여 생활한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무렵이 되면 이 일대는 아연 활기를 띤다. 솜털이 남아있을 듯한 앳된 여자애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단란주점 등으로 들어 가고 10대 「삐끼」들이 거리에 늘어 선다. 가리봉동 T음식점의 종업원은 『왜 이렇게 10대들이 많으냐』는 질문을 『가리봉동이니까요』라는 한마디로 받아 넘겼다. 일대에 즐비한 유흥업소에서 10대를 종업원으로 받아주니 10대들이 모여든다는 얘기였다.

L단란주점에서 만난 P(17)양, K(18)양 등은 모두 처음에는 20대라고 나이를 속였다. 『끝내 주게 놀아 줄테니 양주 하나 시키세요』라며 은근히 조르는 품이 프로급이었다. P양은 『벌집에서 친구 2명과 생활하며 밤에는 단란주점에 나가고 낮에는 쇼핑 따위로 시간을 보낸다』며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바로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밤 10시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텍사스」거리. 술집들이 모두 문이 닫히고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취재팀이 머뭇거리고 있자 20대 삐끼들이 다가와 『14∼17세의 영계들만 있다』며 팔을 잡아 끌었다. 이들은 취재팀의 태도가 시원치 않았던지 회사원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남자 2명에 따라 붙었다. 얘기가 잘 된 듯 삐끼가 워키토키로 뭐라고 말하자 바로 앞집의 커튼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앳된 여자애들이 어서 들어 오라고 손짓했다. 상반신을 반라로 드러낸 「아가씨」들은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얼핏 보기에도 10대였다. 「삐끼」 H(24)씨는 『이곳 아가씨들은 대개 집을 나와 제발로 걸어 들어 오는데 낮에는 인근 「쪽방」에서 2∼4명씩 어울려 같이 지낸다』고 말했다.

밤 11시가 넘자 일대의 비디오방과 노래방 편의방에 10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개는 남녀가 섞여 4, 5명씩 몰려 다녔고 10여명이 한꺼번에 다니는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다. K편의방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던 K(17)군은 장안동의 중국집에서 음식배달을 하는 「철가방」일을 하고 있다며 집에 가고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같이 있던 S공고 2학년 C(17)군은 같은 반 56명중 가출경험이 있는 학생이 3분의 2는 된다며 『늘 3∼5자리는 비어있다』고 알려 주었다.

같은 시각 서울 성동구 군자교 근처의 H주유소에서는 10대 남녀 4명이 기름을 넣어주는 「총잡이」일을 하고 있었다. J(15)양은 『여자애들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애들이 많지만 남자애들은 집을 나와 한달에 40만원 가량 받으며 여기서 숙식한다』고 설명했다. 주인 Y(43)씨는 『애들이 제발로 써 달라고 찾아 와 처음에는 돌려 보내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이 든 사람을 구하기는 어려워 애들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며 『말을 잘 듣는데다 그만 둘 때도 친구를 소개해 주고 나가기 때문에 사람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삐끼」 「철가방」 「총잡이」 등은 집에서 뛰쳐 나온 10대 남자애들이 가장 쉽게 찾는 일이다. 마땅한 잠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겨울에는 더 인기가 있다. 신문배달도 겨울에는 인기가 있다. 지난해에만 3∼15일씩 무려 6번이나 가출했다는 K(15)군은 『처음 가출했을 때는 총신대 인근 재개발지역의 빈집에서 잤다』며 『돈이 필요하면 다른 동네에 가서 지나가는 학생들 돈을 빼앗는 「삥뜯기」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는 끊임없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가출한 중학생들이 여전히 몰려들고 있었다. 오락실과 놀이시설이 가득할 뿐만 아니라 또래의 친구들이 많아 즉석 미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청원경찰 박길종씨는 『놀이시설이 많은데다 밤에 몰래 잠잘 수 있는 은밀한 곳도 있어 가출한 애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골치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L공고 1학년 L(17)군은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지난해 6∼8월 3개월동안 가출했을 때는 신문배달과 술집선전물 돌리기, 웨이터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어요. 비디오방 노래방 편의방 오락실 커피숍 등 가서 놀만한 곳은 널려있어요. 못들어 오게 하는 업소는 한군데도 없고 경찰 단속이 있는 날에는 아예 다음에 오라고 알려 주기까지 했어요』<이진동 기자>

◎딸찾는 부모들/“건강하게 살아있기만 하다면…”“집나갈 이유가 없는데…”/갈만한 곳 샅샅이 뒤졌지만 얻은건 편의점에 있다는 소식뿐/이젠 기다림에 지쳐 돌아오리라는 기대 식은지 오래

서울 구로구에 사는 주부 김모(38)씨는 하루하루 간을 졸이며 산다. 중학교 2학년인 맏딸 수진(가명)이가 같은 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집을 나갔다. 수진이는 올초 소집일날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서서는 두달 가까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낙담 속에서도 자꾸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가정 불화가 있었다거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그럴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학기초에는 성적이 상위권에 들었다가 2학기때 중간으로 떨어져 공부 열심히 하라고 혼을 내고 질질 끌리는 바지가 보기싫어 입지 말라고 신경질을 부린 적은 있지만 착실했던 수진이가 그정도 일로 집을 나갔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때 왜 따뜻한 말로 설득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무선호출을 해 보았지만 역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딸아이가 가출한 뒤 다른 집나간 아이들 부모와 함께 인근 신도림동 가리봉동 등지의 주유소와 편의점 호프집 다방 술집 단란주점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진이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김씨는 발이 닳도록 수소문한 끝에 겨우 딸아이의 학교친구 한명에게서 수진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딸이 그 친구의 무선호출기에 『엄마 목소리가 어떤지 한번 확인해 보고 나를 찾지는 말라고 해』 『편의점에 취직해 먹고 자는 걱정은 없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소식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물론 수진이가 편의점에 취직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이 어린 여자애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숙식을 제공한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었다. 그러나 달리 확인해 볼 길도 없었다. 다만 살아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언젠가는 내손으로 반드시 너를 찾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찾다찾다 지친 김씨는 딸의 무선호출기에 『빨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의 음성녹음을 남겨봤다. 딸을 자극할 까 싶어 미뤄 온 터였다. 곧바로 수진이 친구를 통해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가 경찰에 알리면 자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야무진 수진이 성격으로 보아 혹시라도 다른 「결심」을 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전단이라도 제작해 여기저기 돌려 볼 생각』이지만 쉽게 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식은 지 오래이다.

서울 아현동에 사는 주부 장모(43)씨의 딸 지혜(가명)는 고등학교 1학년때인 95년 9월 집을 나갔다. 장씨는 온갖 생각에 시달렸다.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중3때 친구들과 노래방을 들락거리더니 그때 친구를 잘못 사귄 것인지, 잦은 지각으로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는데 그래서 집을 나간건지….

이제는 눈물도 말랐고 거울앞에 서면 몇년은 더 늙어버린 느낌이다. 파출소에 신고도 했고 방송에도 내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생각끝에 딸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이동통신회사에 문의해 무선호출번호를 알아 냈다. 대금 결제 주소를 확인한 순간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소지인 응암동의 한 단란주점을 찾아 갔더니 이미 문을 닫은 집이었다. 무선호출을 수없이 해도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등록번호가 취소돼 버렸다. 이제 딸을 찾을 수 있는 끈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장씨에게는 딸이 살아있다는 것만이 위안이다. 지혜가 지난해 여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청주의 편의점에 있다고 알려왔다는 소식을 한 친구가 전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엄마얘기 하더냐』고 물어 보았다. 『매일 엄마가 보고싶어 울고 학교에도 다시 다니고 싶다고 그랬어요』라는 대답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장씨는 딸이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저 건강히 살아있기만 하다면, 어쩌다 연락이라도 한번 준다면…. 이런 소망이 불안에 흔들리는 장씨를 지탱하고 있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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