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권위 등보다 취약/지도부 정책 혼선땐 새로운 외교갈등 소지/아태 안정에도 악영향덩샤오핑(등소평)의 죽음은 현대 중국사와 세계정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 시대(위대한 혁명 지도자의 시대)의 종말이자 새로운 시대, 즉 장쩌민(강택민)이 이끄는 집단 지도력의 시대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불확실한 미·중 관계의 진로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중 관계는 지그재그식 과정을 겪어왔다. 최근의 커다란 침체기는 89년의 천안문 사태였는데 양국은 당시 상대방을 이념적 위협으로 간주했었다. 이는 양국간의 정치 경제전략 등 주요 쌍무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90년대초부터 베이징(북경)과 워싱턴 사이의 활발한 교류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이것은 「조건부 간여」라는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중국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클린턴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인권과 불공정무역 등의 이슈에서는 중국을 비판했지만 94년 들어 중국에 교역상 최혜국대우를 연장해 주는 조치와 인권문제를 분리함으로써 양국관계의 중요한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두나라 사이에는 대만문제, 통상마찰 및 무기수출 등을 포함한 미결 과제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대만의 장래가 현상태로 남아있는 한 미·중 갈등의 소지는 계속된다. 등이 아시아의 한 국가원수에게 지적한 바대로 대만문제는 미·중 관계 개선에 주요 걸림돌이며 양국간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베이징 지도부에 대한 가장 가시적인 도전은 95년 6월 클린턴 대통령이 대만의 리덩후이(이등휘) 총통에게 미국을 「개인 자격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건이었다. 이의 독자외교에 격분한 중국은 그해 여름과 96년 봄 대만 근해에서 일련의 군사훈련과 미사일 발사시험을 강행했다. 미국은 이에 맞서 2척의 항공모함을 대만 인근에 파견해 근래 보기드문 해군력을 과시했다. 미·중간에는 이처럼 대만문제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과 확전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충돌할 위험성이 향후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등의 지도력 아래서 베이징은 항상 워싱턴과의 우호관계에 커다란 비중을 두어 왔다. 등은 세계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양국의 국가이익은 근본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72년 양국을 화해로 이끈 전략적 토대는 여전히 변치않고 있다. 냉전종식과 소련의 붕괴를 가져온 90년대초 등은 대미정책의 지침이 되는 16자 원칙을 발표했다.
증가신임(상호신뢰를 늘리고) 감소마번(마찰을 줄이며) 증가합작(협력은 쌓되) 불고대항(갈등은 추구하지 말라)이 그것이다.
이 지침을 토대로 베이징은 90년대 전반부에는 미국과의 공개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베이징의 지도층이나 중국내 조야에서는 민족주의와 함께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자라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은 대미 외교정책에 경계심과 경직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
강이 89년 최고직에 오른 이후 8년간 권력기반을 다져왔다고는 하지만 등이나 마오쩌둥(모택동)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의 외교정책, 특히 대미정책에서는 좀 더 다른 소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강체제하의 베이징 리더십은 미국과의 공개적 갈등을 피해온 등의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대미관계에서 더욱 협력을 증진시킬지 혹은 새로운 갈등으로 나아갈지는 불확실한 상태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앨 고어부통령의 중국방문이 양국간 관계의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2년내에 예정돼 있는 강주석과 클린턴 대통령간의 상호방문이 미·중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미·중 관계는 양국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번영과 안정에도 긴요하다.<조전승 국제정치학>조전승>
□약력
▲미 버클리대 정치학박사
▲하버드대 페어뱅크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
▲아메리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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