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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길(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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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길(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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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는 온 국민이 화병 들겠다. 국민들은 기가 막혀서 못살겠다고 한다. 분통이 터져서 못살겠다고 한다. 일손이 안잡히고 아무 의욕도 없어진다고 한다. 모두 허탈에 빠졌다. 고함을 질러대니 허허한 하늘이요 용을 써보니 내 몸만 저리다. 그렇다고 또 슬쩍 이대로 넘길 것인가. 국민들은 이번에는 체념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분노는 배출구를 찾고 있다. 등창으로 터지지 않으면 어떻게라도 터질 판이다. 이 억분을 어떻게 삭일 것인가. 그 해법 하나에 나라의 안전이 달렸다.25일로 예정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담화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보의혹과 그 수사결과로 야기된 국민들의 경악과 불만은 몇마디의 위무로 가라앉을 단계가 아니다. 아무리 사과를 하더라도 벌써 한두번도 아닌 이골난 사과에 금방 마음을 풀만큼 느슨한 맺힘도 아니고, 아무리 재발방지를 다짐하더라도 그 말을 곧이 들을만큼 어수룩한 불신도 아니다.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어떤 유감표시나 조처도 지금에 와서는 감동적인 것일 수 없다. 한쪽에서는 권력의 부자세습이요 한쪽에서는 권력의 부자공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정권의 파장인 지금 그를 격리시킨들 때늦은 일이다.

당정개편이라지만 걸핏하면 끄집어내는 이 카드도 식상한지 오래다. 궁극적인 책임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이 마당에 책임을 두루뭉실 보자기에 싸서 던지는 그 정도로 쇄신될 오늘의 국면이 아닌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절실히 고대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일의 진상규명이다. 진실을 몰라 가슴이 막히는 것이다. 진실이 덮여져 있기때문에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국민들의 절규는 실체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실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사과며 다짐이며 나머지는 그 다음의 일이다.

검찰은 왜 수사결과를 곧이 곧대로 믿어주지 않느냐고 볼멘 소리지만, 국민들로서는 왜 국민의 진심을 곧이 곧대로 믿어주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국회의 국정조사특위에 기대를 걸어보자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실체에 접근하려는 집권 여당의 양심적인 의지 없이는 무의미하다. 게다가 그 실체에 대한 공포가 야당이라고 없는 것이 아니다. 한보 의혹의 실체란 외압의 주체가 핵심이기는 하지만 관·정계에 뿌려진 모든 「떡값」도 거기에 포함된다. 떡값도 외압에 직·간접적으로 작용을 했다. 이것이 밝혀져야 할 실체의 총체다. 적어도 250억원이란 돈의 행방이 묘연하다. 국회의원 누구도 이 혐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들에게 특위를 맡겨야 하니 정권투쟁 차원의 고성만 질러댔지 떡값은 서로 비켜갈 것이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보의혹의 진상을 밝힐 길은 아무래도 특별검사제 뿐인 것같다.

특별검사에 의한 재수사가 법제상 난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결단에 달렸다.

또 그것이 정부·여당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되겠지만, 지금 안고있는 부담을 그대로 지고가는 무리가 가져올 엄청난 후유증의 부담보다는 훨씬 낫다.

특검제는 외압의 주체만 캐내자는 것이 아니라 한보리스트의 전모를 밝히자는 것이다. 특검제를 주장하는 야당으로서도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검찰이 특검의 재수사에 불안해 할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검찰독립의 큰 호기가 될 수 있다.

특별검사가 모든 것을 속 시원히 파헤쳐낸다면 그것은 이 나라의 막힌 기를 통하게 하는 일이다. 나라의 고열이 금방 내릴 것이다. 그 결과가 정치권을 정화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자체가 김영삼정부의 개혁정책의 가장 큰 성과일 것이고 개혁중의 개혁일 것이고 나아가 모든 개혁의 새로운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것이 김영삼정부의 허물을 더 들추어낸다 하더라도 그 용단이 그 허물을 사면할 날이 올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은 「대도무문」이다. 큰 도의 길은 도처에 있다는 뜻이겠지만, 큰 도는 문 같은 것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문을 통하는 길은 벌써 대도가 아니라 소로다. 김대통령은 지금 소로를 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정이나 정략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내다보아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라의 길이라면 반드시 가야하는 것이 대통령의 길이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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