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시대 무인의 글/학계 비상한 관심조선 숙종 때의 백일헌 이삼(1677∼1735) 장군의 가사작품이 수록된 문집 「만록」이 단국대 국문학과 진동혁(61·한국시조학회 명예회장)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무인출신으로 후세에 문학작품을 남긴 예는 임진왜란 당시 무신 박인로의 가사 「선상탄」 등 극히 드물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백일헌이 쓴 「만록」은 가로 29㎝, 세로 20.5㎝ 크기에 48쪽분량으로 표지는 황지를 사용했으며 저지에 내용을 기록했다. 수록 내용은 추연남루기, 비천정기, 한시 33수, 반무가, 단가(시조) 등이다. 백일헌은 12세 때 명재 윤증(1629∼1714)을 사사, 일찍부터 문재를 인정받았으나 무인의 길을 걸어 포도대장 한성판윤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시호 백일헌은 「임금에 대한 충성이 밝은 해와 같이 투철하다」는 뜻으로 영조가 하사했다.
문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1707년 숙종 33년에 창원부사로 나가 있을때 지은 가사 「반무가」. 이장군의 시조는 원래 무인이었는데 중간에 문신을 지내다가 자신의 대에 이르러 다시 무인으로 돌아가 진충보국하게 된 기쁨을 가사로 읊은 것이다. 여기서 반자는 「돌아간다」는 의미로 쓰였다.
「어져 져 벗님내 이내 말 들어보소…」처럼 영탄조, 하소연조로 시작하는 반무가는 용어와 문장수식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문신존중, 무인폄하」가 지배적이었던 당시 사회에서 무인이 된 기쁨을 노래한 독특한 작품이다.
또 단가 2편은 1728년 영조 4년 이인좌난을 평정 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어 「함은군」을 봉작받고 2년 뒤인 1730년에 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시조다. 이장군은 유저로 「백일헌유집」 8권 4책을 남겼지만 「반무가」는 실려있지 않다.
진교수는 이 문집을 최근 서울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찾아냈다. 80년대부터 인사동과 청계천, 전주의 고서점을 자주 찾은 그는 그동안 고시조 600여수를 발굴했으며 문체부가 올해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이세보(1832∼1895)도 그의 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시조작가 이세보는 대원군 당시 경복궁재건의 중책을 맡았으며 공조판서를 6차례 역임하는 등 459수의 시조를 남겨 최다 시조작가로 꼽히고 있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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