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던 개혁 “여전히 미완성”/박수받던 사정바람 날치기·한보비리로 빛 잃어정치/장밋빛 ‘신경제’도 물가·성장·국제수지 ‘쉰경제’로경제/‘사고공화국’ 오명에 사법·노사개혁마저 용두사미사회·문화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취임 4주년을 맞는다. 김대통령의 문민정부가 4년동안 줄기차게 매달려온 테마는 「변화와 개혁」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여전히 미완이다. 김대통령은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간단없이 계속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취지와는 달리 무정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천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노정시켰다. 문민정부 4년은 긍정보다 부정의 평가를 더 많이 받고있다.
▷정치◁
김대통령은 특히 정치분야에서 굵직굵직한 개혁조치들을 내놓았다. 정치권의 기존 상식에 비추어 획기적인 조치들이 쏟아져 나와 한때 「개혁정치」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공직자 재산공개, 통합선거법 제정, 정치권 사정, 5·18특별법 제정, 두 전직대통령 구속 등은 지난 4년의 정치를 숨가쁘게 만들었다.
집권 초기 김대통령은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않겠다』고 선언, 스스로를 청교도적 청빈정치의 실천자로 규정지었다. 그결과 취임초기에 90%를 넘는 경이적인 국민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독특한 국정운영 자세는 「독선정치」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때때로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노동법 파문이 그 한 예이다. 특정지역에 편중된 인사는 포용력 없는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게하고 있다. 남북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신중성과 일관성이 결여돼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물론 북한의 막무가내식 태도변화가 원인이긴 하다. 이인모 노인의 북한 송환이 일관성 결여의 대표적 사례이다. 한보사태는 김대통령이 지키려했던 개혁의 근저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한보사태로 김대통령 측근들이 구속되고 차남 현철씨가 각종 의혹설에 시달리고 있다.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부패구조에 얽혀있다는 사실에서 김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빛을 잃고 있다.
▷경제◁
문민정부는 출범초 「신경제 5개년계획」을 발표, 화려한 경제청사진를 제시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가 「신경제」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경제는 곤두박질 쳐 버렸다. 문민정부는 경제성장 물가안정 국제수지 등 3마리토끼(3대 거시경제목표)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신경제 5개년계획」대로라면 우리경제는 지난해 경상수지에서 21억달러 흑자를 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안정됐어야 했다. 또 7%대의 안정성장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경상수지는 무려 237억달러의 적자를 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를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해 성장률을 7%로 추정하고 있으나 민간경제학자들은 6%대로 떨어지고 올해는 4∼5%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업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문제가 됐다. 문민정부 4년만에 한국경제의 성장구조가 완전히 와해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경제가 모두 호전되고 있음에도 불구, 우리나라만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행정규제완화, 재벌개혁, 금융자율화, 사회간접자본(SOC)확충, 공기업민영화 등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주요 경제정책들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이미 백지화했다.
지난해 선진국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경제외교사에 한획을 그었으나 경제침체로 이마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사회·문화◁
문민정부는 4년내내 대형사건 사고로 점철돼 왔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대구가스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등 대형사건 사고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다. 영일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문민정부와 인과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그로인한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는 문민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김대통령은 취임직후부터 대규모 사정작업을 벌였으나 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려 빛이 바랬다. 95년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법개혁은 사법부 변호사단체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용두사미로 끝났고, 노사개혁은 노동법파문에 휘말려 있다.
김대통령의 「문화공약」이행은 어려움 때문인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부예산의 1%를 문화분야에 배정하겠다던 공약은 0.6%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인지 문민정부의 문화정책이 과거의 권위주의 시절보다 나아진게 없다고 문화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철거는 찬반양론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 35년의 치욕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됐다. 민족의 정체성 확보에 큰 기여를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듣고있다. 일본과 공동개최이지만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도 문민정부의 업적으로 꼽힌다.<이상호·이영성·고재학 기자>이상호·이영성·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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