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노조선 단체협약 삽입요구도『차라리 명예퇴직을 시켜달라』
고용 불안이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가운데 명예퇴직제 실시를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가 근로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리해고를 당하느니 생활을 꾸려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정리해고제를 명문화해 총파업 파문을 몰고왔던 개정노동법은 국회 재논의를 앞두고 있으나, 근로자들은 이미 「고용불안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무차별 감원 당하느니 명예퇴직하는 것이 오히려 건질 것이 많다는 계산이다.
「빅뱅」에 비유될 정도의 대규모 개혁을 앞둔 데다 한보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금융계 노동자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어떤 방식으로든 체질 개선책이 나오면 30% 내외의 인원이 감축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 예전에는 고용불안을 이유로 크게 반발하던 노조들이 회사의 명예퇴직제 실시를 선선히 받아들이는가 하면 노조에서 명예퇴직 실시를 요구하는 경우도 생겼다.
K생명 노조는 지난해말 회사측에 요구, 97명의 직원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측이 지난해 10월 권고사직을 거부한 부·차장급 40여명에게 대기발령을 내는 등 변칙적으로 감원을 시도하자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회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퇴직금에 기본급의 600%를 얹어주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실시, 감원 목표인원의 반수가량을 줄였다.
K대 직원노조도 학교측에 명예퇴직제 실시를 건의, 단체협약에 명예퇴직 조항을 포함시킨 케이스다. 노동법 파문 등으로 시행에 필요한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는 유보시킨 상태지만, 정리해고제가 도입되기 전에 명예퇴직제를 명문화하는 것이 낫겠다는게 노조의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노조는 지난해부터 명예퇴직을 건의해왔으나 사용자측이 비용상승을 이유로 이를 거부, 벽에 부딪힌 상태다. 전경련 노조 관계자는 『개정 노동법으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 인력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있는 근로자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H그룹 중견사원 20여명이 『지난해 12월 일거리가 전혀없는 한직으로 발령이 나 변칙적인 퇴직 압력을 받고 있다』며 명예퇴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원직 복직되기도 했다.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 대신 「위로금」을 얹어주는 명예퇴직을 『반기지는 않지만 반대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 요즘 근로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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