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선 우리나라가 근대화한 이후 대표적인 누드화 100여점이 망라된 매머드 전시회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연장전시회까지 하였다고 한다. 누드가 한낱 속되고 에로틱한 대상으로만 여겨져 광고매체에나 등장하는 하위개념으로 전락되는 근간의 추세에 비추어 이 전시회는 누드가 예술작품의 조형적 소재로 격상되어 아름답고 참신한, 더 나아가 숭고한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 누드예술 80년전」이라는 제하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림들뿐이었다. 그림의 전통적 표현의 대상으로는 정물과 풍경, 그리고 인물이 있지만 조각의 표현대상은 인물, 특히 누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단언하건대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각가들은 그들의 조각수업기에 형태습작을 하면서 부단히 누드에 심취하던 시절이 있었다. 40세에 요절한 한국 최초의 누드조각가인 정관 김복진 선생도 당시 누드모델 구하기가 어려워 근친상간으로 숨어 도망다니던 여인을 가까스로 구해 삼복더위에도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각고의 분투를 하였다.
그만큼 조각이라는 형태공부를 하는데 누드는 가장 기본적인 테마인 동시에 절실한 대상인 것이다. 누드란 인체가 취하는 갖가지 동작에 따라 근육과 골격이 변화무쌍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체묘사의 달인인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그냥 돌이 아니고 돌 속에 인간이 갇힌 것처럼 보인다』며 『돌을 쪼되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말할 정도로 투철한 형태감각을 지니지 않았던가.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너스 조각도 다산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인체 누드상이었으며 누드라는 미술양식은 희랍시대에 조각가들에 의해 비로소 채택되어 발아한 표현형식임은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한국 누드미술 80년전엔 당연히 조각도 포함되었어야 했으며 그림으로만 채워진 내용은 차라리 한국 누드회화 80년전이라고 했어야 옳았다. 미술이란 용어를 남발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조각전시가 힘들겠지만 평생 업으로 삼고있는 조각가들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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