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홍수속에 ‘밑빠진 독’ 논란 계속한보사태가 23일로 한달을 맞는다. 정·관계 비호세력에 대한 검찰수사에 관심이 쏠리는 동안 한보사태는 중소기업의 연쇄부도와 자금시장의 동맥경화 등 우리 경제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왔다. 각종 대책이 쏟아졌지만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악화일로에 있고 정부의 조기완공방침에 대한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한보사태의 파장과 정부대책 등을 점검해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완공후 경쟁력 의문 제기/미와 통상마찰 비화 우려
▷정부대책◁
연쇄부도를 막기위해 돈은 「과감하게」 풀고, 한보철강 당진공장의 조기완공을 위해 도로 용수 등 사회간접자본을 「최대한」 지원한다는게 정부대책의 기본방향이었다. 지난달 24일 관계기관 차관회의를 시작으로 모두 9차례의 대책회의를 통해 상업어음할인자금 7,000억원 추가조성과 부도방지·경영안정자금 1조4,000억원 중소기업 지원(자금), 예산조기배정 및 중소기업제품구매 확대(재정), 증자소득공제제도 도입과 세금납기연장(세제) 등 동원할 수 있는 대책을 거의 내놓았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6조원의 한국은행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채권은행단으로부터 확인받은 어음조차 할인되지 않는 등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악화했다. 급기야 정부는 금기시하던 「창구지도」를 거론하며, 금융기관을 채근하고 있으나 자금지원의 대부분이 금융기관의 돈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다 부도이전부터 해오던 대책들이어서 실효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는 아산국가공단 진입도로 완공을 6개월 앞당기고 아산주변 공업단지의 용수량 배분시 당진제철소 배당분을 확대 조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내에서도 민간사업에 예산을 지원한다는 논란이 있는데다 미국 철강업계가 한보지원대책을 보조금협정위배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미국무역대표부에 청원, 통상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높다.
정부의 조기완공방침에 대해서도 기술적·경제적인 측면에서 완공후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공사진척률이 평균 93%이고, 완공후 국내철강생산의 13%를 차지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앞으로 소요될 투자규모, 완공후 경제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현재 당진제철소에 대한 실사작업도 지지부진,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에 발목잡히거나 결국에는 더 큰 부담을 끌어안을 수도 있다.
○6조 풀려도 돈은 안돌고 사채시장까지 얼어붙어
▷금융시장◁
「한보부도사태」이후 자금시장은 돈은 있으나 제대로 돌지않는 자금체증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통화당국은 한보부도이후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6조원의 자금을 금융기관에 방출했다. 그러나 풀린 돈은 금융기관내에서만 고여있고 정작 자금수요처인 기업으로 흘러가지 못해 부도가 급증하고 있다. 심장에서 공급되는 혈액이 말단세포까지 미치지 않아 혈액은 남아도는데 말단세포가 죽어가는 양상이다.
자금체증은 자금 공급기관인 금융기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불경기로 부도율이 높아지자 자금대출에 까다로워진 금융기관들이 「한보쇼크」를 받은 후 대출을 더욱 빡빡하게 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2월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평가를 의식, 주총전에 신용대출을 하지않고 극히 안전한 곳에만 대출하는가 하면 종합금융사들도 「한보사태」이후 특A급 기업어음만 할인해주는 「몸사리기」대출을 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원화환율이 급등, 기업들이 『달러값이 더 오르기전에 미리 사놓자』는 달러확보전에 나서 기업들의 원화자금부족을 가중시켰다. 지난해말 외화예금이 15억달러이던 것이 41억달러로 늘어나 2조2,000억원가량(26억달러)이 환차손방지용 자금으로 묶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채시장도 한보사태이후 얼어붙어 있다. 중견기업들이 발행한 B급어음의 할인율이 월 1.4%수준에서 1.5∼2.0%수준으로 올랐고 일부 중견건설업체의 어음할인율은 큰 폭으로 올랐다.
이같은 자금체증으로 인해 부도율이 급등하고 있다. 1월 어음부도율은 0.21%로 한보관련 부도를 제외하더라도 0.16%수준을 기록, 지난해 10월까지 0.12%수준이던 것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계기업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는 것은 물론 자금체증으로 멀쩡한 기업마저 흑자도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부도낸 국내 3대 문구업체인 마이크로코리아사의 경우도 흑자도산이었다.
○피해업체 4,000개 이상/부도 하루 4개 더늘어
▷중소기업◁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24일부터 신고를 받은 한보피해사례 접수결과 지금까지 피해액은 749개 업체에 모두 4,636억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한보철강 하청업체로 600여개의 설비제조업체, 150여개의 원·부자재 납품업체가 포함돼있다. 그러나 이는 한보철강과 1차 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만 집계한 것이어서 2, 3차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면 전체 피해업체는 3,5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주)한보 상아제약 한보에너지 등 나머지 3개 부도계열사의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피해업체수는 4,000개이상이 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보가 무너진 지난달 23일이후 서울에서는 하루평균 19개의 중소기업이 부도로 쓰러졌다. 부도업체 평균치인 15개보다 4개 업체가 더 늘어난 수치다.
○철근 품귀 등 수급불균형/건설·중공업 등도 주름살
▷산업계 파장◁
한보사태는 철강업계는 물론 해운·중공업·건설업계 등 거의 전산업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우선 철강업계는 한보철강의 조업차질로 철근 열연강판 등의 생산이 줄어 4월의 철근성수기를 맞아 품귀가 예상되고 있다. 이와함께 당진제철소 B지구에 건설중인 코렉스공장 및 제강·열연·냉연공장 등의 완공이 늦어져 철강제품 전체의 수급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국내은행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액화천연가스수송선 입찰이 늦어지고 있고 한보의 위장계열사인 대동조선에 선박을 발주한 선사들이 선박을 제때 확보할 수 없게 됐다.
당진제철소 공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중공업계와 건설업계도 공사대금을 못받아 부도위기에 직면해있는 등 심각한 영향을 입고 있다. 이미 자금조달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 상당수는 부도를 냈는데 당진제철소 공사에 대한 정부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소규모 명맥은 어어갈듯
▷한보 재기여부◁
정태수 총회장의 재기여부도 관심사항. 재계에 따르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보철강 (주)한보 상아제약 한보에너지는 새 주인을 맞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실한 한보건설 대성목재 한맥유니온, 부도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이 없는 한보관광 한보정보통신 등은 명맥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한보철강 등 4개사의 매출이 그룹전체의 84%, 자산은 86%에 달해 사실상 공중분해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러나 정총회장의 은닉재산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아 잔여기업을 중심으로 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유승호·정희경·황유석 기자>유승호·정희경·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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