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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알맹이가 빠졌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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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알맹이가 빠졌다(사설)

입력
1997.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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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발표는 예측했던 대로였다. 한보 관련자 2명, 은행장 2명, 국회의원 4명, 장관 1명 등 9명 구속에 불구속 기소 1명, 기소유예 4명이 수사결과이다. 그토록 강조했던 「외압 실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느니 하는 시중의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한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성역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혹시나 하고 일말의 기대를 품어 왔으나 역대 정권의 권력층이 개입된 비리수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결과였다. 정부의 상황 인식에 깊은 회의마저 갖게 된다.물을 것도 없이 국민의 가장 큰 궁금증은 은행장을 움직인 힘의 실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 하나이다. 그런데 검찰은 야당이 의혹의 실체라고 주장한 김현철씨에 대한 조사 한번없이 수사를 끝냈다. 최병국 대검 중수부장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거액대출의 배경에 관해 『정태수의 부탁을 받은 홍인길 등의 대출청탁에도 그 원인이 일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홍의원이 외압의 실체라는 것인지 누가 더 있다는 것인지 모를 말이다. 은행들이 자체판단으로 대출해 줬다면서 홍의원의 청탁도 작용했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삼척동자라도 그를 이번 사건의 배후인물로 믿을 사람은 없다.

최중수부장은 이번 사건을 기업주와 공직자들이 연루된 전형적 비리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96년 이전에는 대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말은 홍의원이 95년 1월 대출청탁과 관련해 2억원을 받았다는 발표내용과 배치된다. 비자금으로 인정한 2,316억원의 용도도 밝히지 못했고, 시설자금 내역도 가리지 못했다.

검찰은 김현철씨가 국민회의 의원 등 6명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사건 조사를 통해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수사결과 발표를 조사 이후로 연기하는 게 옳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고소사건이니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한 뒤에 야당의원들의 명예훼손 혐의 유무와 함께 김현철씨의 한보사태 관련 여부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텐데, 수사결과 발표 후 하겠다는 조사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관련부처는 정말 깨끗한가 하는 의혹도 여전히 남는다. 검찰은 박재윤 전 통산부장관, 한이헌 전 청와대경제수석, 이석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관련부처 실무자들도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 위법 사실이 밝혀진 것이 없다니 모두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이번 사건수사가 남긴 또 하나의 역작용은 정씨에게서 검은 돈을 받은 정치인들을 문책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정경유착을 조장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얼마를 받았다는 구체적인 사실이 보도됐는데도 검찰은 사실 여부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최고위 검찰간부는 5,000만원 받은 것도 뉴스가 되느냐는 말로 수사의 필요성조차 묵살했다. 손이 달려 수사할 여유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5,000만원 받은 행위를 문제삼지 않은 것은 그것을 합법화하고 그 관행을 인정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한보의혹을 이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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