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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생 꿈꾸지만 일자리부터 벽에 부딪쳐/귀순자의 남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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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생 꿈꾸지만 일자리부터 벽에 부딪쳐/귀순자의 남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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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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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알선 직장 적성과 무관/적응 못하고 막일꾼 되기도/개인주의성향 강한 사회/새 인간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처음 귀순할 때만 해도 국민적 눈길을 한몸에 모으는 귀순자들. 그러나 차차 사회의 관심은 흐려져 가고 각자의 능력과 운에 따라 좌절과 비애를 맛보거나 화려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이념과 체제가 전혀 다른 사회에서 꾸려 가는 제2의 인생이 결코 간단치 않다.

귀순자들은 우리사회 적응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문제에 따른 생활의 어려움을 꼽는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귀순자들중에는 『여기서는 제대로 일해 볼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털어 놓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의 지위나 역할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000만원 이하인 정착금은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쓰인다. 기관의 주선으로 말단 공무원이나 회사원 일을 갖게 되지만 전문 능력이나 성격, 특성 등과 무관한 경우가 많아 상당수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 난다.

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직업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귀순자의 43%가 『그만두고 싶다』고 응답했고 23%가 『정부가 알선해 줘 할 수 없이 다닌다』고 응답했다. 『만족한다』는 대답은 21% 에 지나지 않았다. 귀순자 모임인 숭의동지회에 따르면 회원 567명중 300여명이 직장을 갖고 있고 나머지 200여명은 정부가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가 적발된 김형덕(94년 귀순)씨는 『여기서는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가 없었다』며 『한국에만 가면 잘 살게 되리란 기대를 갖고 넘어 왔지만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는 내게는 꿈같은 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벌목공 출신인 한 귀순자는 『일을 하다가도 문득 북한에서 이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면 노동당원도 되고 대접도 받았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허탈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 문제도 생활고 못지않게 이들을 압박한다. 94년 8월 귀순한 조승희(여)씨는 『한자와 영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며 『명함을 받아들어도 이름을 읽지 못할 정도여서 인간관계 유지가 어렵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워 직장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고충도 자주 제기되고 있다. 대개 노원구와 강서구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귀순자들은 「평양타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끼리끼리 만나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재빨리 적응하는 귀순자들도 적지 않다. 대개는 북에서 상류계층에 속했던 고학력자들이다. 가장 빠르게 성공하는 부류는 동구 유학생 출신들. 이들은 대부분 국내 대학에 재진학하며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대기업 동구담당 부서에 특채되기도 하고 북한관련 연구소에서 맹활약을 한다. 89년 귀순한 전철우씨와 91년 귀순한 김용씨의 경우는 방송활동을 통해 북한출신 스타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귀순자들의 사회적응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편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굳이 상류층 출신이거나 고학력자가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귀순자면 자연히 친구도 늘고 가정도 꾸립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반면 공산사회의 습성을 빨리 버리지 못하면 경쟁사회의 그늘을 전전하게 되지요』<염영남 기자>

◎귀순자 현황과 처우/49년이후 788명… 독신경우 최저 1,500만원 지원

49년부터 현재까지 통계에 잡혀있는 귀순자는 788명. 사망자와 이민자 180여명을 제외한 600여명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고 그중 90여명은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다.

그동안 귀순자는 「귀순 북한동포 보호법」에 따라 법적 보호를 받아왔고 오는 7월부터는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96년 12월 제정)에 따라 보호받게 된다. 귀순후 보통 6개월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을 거치면 귀순동포보호위(위원장 보건복지부차관)에서 최종적으로 「북한 이탈주민」판정을 받아 호적을 얻고 정착금 및 주택, 보로금 등을 지원받는다.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으로 최저임금 28만5,500원의 30배(동거가족 없는 3등급)∼100배(동거가족 3인이상인 1등급)인 856만5,000∼2,855만원이 지급된다. 또 가족수에 따라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보증금 700만∼800만원을 받는다. 가족이 없는 3등급 귀순자의 경우 합쳐서 1,500만원 정도를 받는 셈이다.

또 대학진학때는 국공립대학은 2년간 학비전액, 사립대학은 반액을 지원하고 나머지 기간에 대해서는 학자금 장기융자를 알선해 준다. 근로능력이 없는 귀순자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혜택을 받는다.

한편 △무기나 비행기 선박 등을 갖고 오거나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 귀순자에게는 금 10g(11만원)∼2만g(2억2,000만원)씩의 보로금이 지급된다. 지난해 미그 19기를 몰고 온 이철수씨는 보로금으로 4억7,000만원을 받았다. 물론 93년 6월 이전의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에 따른 지원은 더욱 파격적인 경우도 많아 83년 귀순한 이웅평씨는 13억8,000여만원을 받았다.

7월부터 시행되는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른 정착지원금 등은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학력·자격 인정제도와 체계적인 사회적응교육, 직업훈련 등을 통한 귀순자의 자립기반 마련에 중점이 주어져 있다.<박진용 기자>

◎정책 문제점과 대책/난민­국민 명확한 기준조차 없어/보호 ‘따로’ 지원 ‘따로’ 관리체제 허술

귀순자들이 늘어 나면서 그들의 성공적인 정착이 점차 우리사회의 안정과 깊은 상관관계를 띠어가고 있다. 또 이 문제는 통일이후 우리가 겪게 될 「통일 후유증」 극복의 실험이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 때문에 이문제를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탈북 귀순자에 대한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법적 지위 부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귀순자들이 폭증할 경우 국제법상 난민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국적법을 적용해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미 베이징(북경) 한국대사관이 망명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을 설득해 돌려보내느라 바쁜 것으로 알려졌다. 「선별귀순 허용」이란 말이 나오고 심지어 국내정치상황과 관련한 「공작 귀순」의혹이 제기되는 경우까지 있는 것도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귀순자 관리체제도 허술하다. 귀순직후의 보호·관리는 안기부와 통일원이,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은 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정착지원은 보건복지부가, 사후관리·보호는 안기부와 경찰청에서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보호·관리가 어려웠다. 지난해 말 제정된 지원법은 통일원을 귀순자 보호·관리 업무의 주무부서로 지정했으나 부처간 원활한 협조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귀순자들의 국내정착을 위한 지원체제도 엉성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귀순자들은 국가유공자 수준의 대우를 받았지만 귀순자가 급증한 90년대 들어 재정적 부담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귀순자에 대한 대우는 생활보호 대상자 수준으로 전락했다. 또한 귀순자들의 북한내 지위나 정보가치에 따라 정착금 지원 기준이 크게 달라 귀순자 사이의 갈등과 위화감,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고 있다.

귀순자의 정착을 위해 사회보장성 지원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지원금의 단계적 지급, 주택융자, 실업연금, 한시적인 조세감면 등을 적용해 귀순자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조재우 기자>

◎구서독의 지원정책/단일법안 마련 탈출자 전원수용 자립정착 유도

귀순자 수용 및 지원방안과 관련, 통일이전 동독 탈출주민에 대한 서독 정부의 정착지원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통일연구원의 김영윤 정책연구실장은 『서독은 「동독 주민은 곧 독일 국민」이라는 단일국적주의를 고수, 동독 주민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건너오건 모두 수용한다는 원칙에 상응하는 대우를 했다』고 말했다. 동독 탈출자를 인도적·동포애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 통일 밑거름으로 삼았다는 것. 1945년부터 90년 통일 때까지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 주민은 461만 7,000여명에 달한다. 김실장은 『서독 정부는 급증하는 동독 탈출자의 수용 및 관리, 정착지원을 위해 일찌감치 단일법안을 제정, 시행했다』며 『정착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서독의 동독 탈출주민 지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철저한 자활원칙이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정착 지원금은 서독내 극빈층에 제공하는 사회부조금 수준으로 해 자립 정착을 유도했다』며 『우리나라와 달리 정착지원금을 분할 지급해 동독탈출자의 대량유입에 대한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사기나 사업실패 등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정착민의 사회적응 훈련은 종교단체 사회단체 등 민간주도로 행하되 이에 필요한 공간과 재정지원을 정부가 맡는 등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도 두드러졌다. 교육내용도 사상교육보다는 주택구입요령, 각종 사회보장혜택 신청 요령, 법령 등 자주적 시민으로 뿌리내리는 데 필요한 생활교육에 치중했다.<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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