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김용씨 등 힘모아 북한식 냉면집 운영/숭의동지회·축구단 등 모임통해 친목도모도귀순자들 사이의 유대는 남다르다. 고향과 가족을 잃은 외로움이 큰데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일산 신도시 호수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평양냉면 전문점 「모란각」. 지난해 12월 북한 평양 모란봉에 있는 음식점 이름을 따 문을 연 이 집에서는 귀순자 4명이 힘을 모아 앞날을 일구고 있다. 이들은 「귀순 스타」로 잘 알려진 김용(37·91년 10월 귀순)사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40여평 남짓한 규모에 주말이면 평양사투리를 쓰는 70대 후반의 노인으로부터 10대 청소년까지 100여명이 몰려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김씨는 『진짜 평양냉면 맛이라는 소문 덕분』이라며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연신 감사의 미소를 보낸다.
이 집이 제대로 평양냉면 맛을 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방장이 평양상업대학 요리과를 졸업한 후 일류 요리사로 활동하다 94년 11월 귀순한 박명남(34)씨이기 때문이다. 박씨 외에도 저녁시간과 휴일이면 95년 7월 귀순해 현재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다니는 전경철(28)씨 등 2명이 나와 일을 돕는다. 김씨는 이들을 친동생처럼 대한다.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서로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론이다.
『귀순한 후배들이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귀순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냉면집을 생각했지요.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많은 귀순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냉면과 평양만두, 북한식 순대 등 모란각의 모든 메뉴를 책임지고 있는 박씨가 요즘 과로탓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 김씨의 유일한 걱정이다.
서울 정동의 냉면전문점 「옥류관」도 모란각과 비슷한 음식점이다. 김선일(31)씨와 김창화(40)씨를 비롯한 귀순자 6명이 출자해 문을 연 이 음식점은 국화과 식물인 야콘을 재료로 한 「북한식 야콘냉면」을 명물로 탄생시켰다.
89년 휴전선을 넘어 온 인민군하사 출신의 김선일씨와 88년 베이징(북경) 유학중 귀순한 김창화씨가 귀순자 친목모임 후배들과 뜻을 모은 것이 95년 4월. 돈도 벌고 귀순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공간도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역 일꾼」으로 일하다 87년 귀순해 강화도에서 야콘 냉면집을 운영하고 있던 김창화씨의 형 동춘(52)씨가 적극적으로 동생의 「사업계획」을 밀어 주었다. 김선일씨는 『친하게 지내는 귀순자 20여명은 자기 집처럼 들러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고 귀띔했다.
귀순자들이 조직한 친목단체도 상호부조 활동을 통해 서로 고충을 나누는 공간이다. 560여명의 회원을 가진 숭의동지회(회장 오선석)와 통의회(회장 김신조) 한백회(회장 김영성) 등이 대표적인 모임. 또 지난해 12월 귀순자 23명이 「형제축구단」을 창단, 매주 친선경기를 갖고 있고 여성귀순자 10여명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젊은 귀순자들도 학교생활정보를 교환하는 등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이한영씨 피격사건으로 안전상 활동의 제약을 받게 돼 주례행사인 축구경기가 취소되는 등 대부분의 모임이 보류된 상태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숭의동지회 오선석 회장/‘귀순자’ 대신 ‘자유의거용사’로 불러달라/취업이 가장 큰 고민/주위 따뜻한 시선 절실
『국민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보여 주면 큰 힘이 될 겁니다』
귀순자 친목모임인 숭의동지회 오선석(51) 회장은 귀순자들의 우리사회 적응에는 무엇보다 주위의 따뜻한 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투항」의 뜻이 담긴 「귀순」이라는 말 대신 자유를 찾아 온 사람들이란 뜻에서 「자유의거용사」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인 듯했다. 그는 귀순자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취업문제를 들었다. 『일자리가 없어 온종일 집에 누워 지내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보니 자꾸 불만이 쌓이고 적응도 늦어져요』
그래서 그는 지난해 「북한이탈 주민 보호·정착지원법」이 제정되기 전 국회 등 여러곳을 찾아 다니며 「귀순자 취업 알선」을 강제조항으로 해 달라고 탄원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결과적으로 거론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돼 버려 안타깝기 한량 없었다.
그는 이한영씨 피격사건후 경찰 3명이 늘 함께 행동하고 있어 위기를 실감한다면서 『비슷한 사건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불안해 했다. 북한여성의 실태에 대해 자주 강연을 했던 한 여성 귀순자가 협박전화에 시달리다가 불면증이 생겼다고 전했다. 밤 12시쯤에 전화를 걸어 『조국을 배반하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으름짱을 놓고는 끊어버린다는 것.
20세때인 66년 원산에서 고깃배를 타고 울릉도로 탈출했던 그는 통일이 되면 꼭 할 일이 있다. 자신의 한국체험을 북한주민들에게 들려 줘 그들의 적응을 도와 주는 것. 『그것이 나를 도와 준 이 사회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지요』<조재우 기자>조재우>
◎후원단체활동 점차 활발/귀순 북한동포 후원회/한기총 북한동포돕기위/보조금 지급·결연 등
귀순자들을 위한 후원단체의 활동도 차츰 활발해 지고 있다.
72년 원호처(현 국가보훈처) 산하단체로 출발, 지난 25년간 꾸준히 후원사업을 벌여 온 귀순북한동포후원회(이사장 오제도)가 대표적인 단체. 후원회의 주요사업은 귀순자의 사회적응 교육 및 생활안정 지원이다. 20여명의 저소득 귀순자에 대해 월 5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하고 귀순자 친목단체에 대해서도 연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7월에는 통일원 산하 단체로 재발족할 계획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 북한동포돕기위원회는 신도 가정과 사업체를 귀순자와 연결하는 「한가족 되어 주기」와 「직장 마련해 주기」운동을 펴고 있다. 생활보조와 대학교육 지원은 물론, 순복음교회 산하 엘림복지원에서 직업교육도 하고 있다. 담당간사 박신호(30)씨는 『아직 결연 및 후원대상 귀순자가 25명에 불과하지만 차차 운동을 확대하고 98년 귀순자를 위한 정부의 대규모 수용소 건립사업에도 동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북나눔운동본부(이사장 김성수 성공회 주교)는 영어강좌를 원하는 귀순자에게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개인지도를 받게 하고 개인상담과 후원도 아끼지 않는다. 김경민 부장은 『귀순자에게 후원자를 연결시켜 주고 소속회원들이 직접 귀순자들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귀순여성 후원단체도 있다. 한민족통일여성협의회(총재 김신삼)는 지난해 9월 「탈북 여성귀순자를 위한 한가위맞이 행사」를 계기로 격월로 「탈북 여성귀순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 귀순자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 생활상담 및 직업알선 등도 행하고 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귀순자보호 프로그램/6개월 수용·교육후 ‘한국 국민’/안기부 등 합동심문후 ‘대성공사’서 적응훈련/2년간 경찰보호 받아
귀순자들이 남한에 도착하면 우선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신원조사를 포함한 심문을 받게 된다. 안기부와 군·경으로 이뤄진 합동심문반이 7∼10일에 걸쳐 탈북 동기와 경로, 북에서의 행적 등을 묻는다.
합동심문이 끝나면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국방부 정보사령부의 시설인 「대성공사」에 대개 6개월 가량 수용된다. 거물급은 안기부가 따로 관리하며 수용기간도 일정하지 않다. 「대성공사」에 머무는 동안 검찰 경찰 안기부 등의 합동조사가 다시 이뤄진다. 북한 정보 획득을 위한 절차다.
이때 귀순자들은 남한사회 적응교육을 받는다. 하루 7시간동안 사상교육을 받고 신문과 TV를 볼 수 있게 된다. 주말에는 기관원의 안내로 외부 견학을 한다. 백화점이나 극장에 가거나 단체로 산업시설과 유적지 등을 방문한다.
「대성공사」에서 나오면 한국 국민이 되는 법적·행정적 절차를 거친다. 보건복지부에 보호신청이 들어가고 주민등록증도 발급된다.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돼 최저 1,500만원의 정착금도 받는다. 제공되는 영구임대아파트의 보증금도 이 돈에서 내야 한다. 취업알선도 이뤄진다. 이때부터의 귀순자 보호·관리는 경찰 보안과 몫이다. 거주지 관할 경찰서의 전담 경찰 2명이 2년간 원칙적으로 24시간 보호·관리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어 강연 등 공식적인 일에만 동행하고 일상적인 활동은 귀순자 본인이 경찰에 보고를 하는 실정이다. 2년이 지나면 경찰관리가 끝나게 되고 이사나 이직 등 변동상황을 귀순자가 경찰에 보고한다. 다만 이한영씨 피격사건 같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이 안전을 점검하게 된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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