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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어떻게 얻나(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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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어떻게 얻나(정달영 칼럼)

입력
1997.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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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에서 안보로. 국면전환이 눈부시게 빠른 세상에 산다. 총파업사태에서 한보사태로 바통을 넘긴 것이 엊그젠데, 자고 나면 만나는 것이 새로운 「사태」다. 그것도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뉴스로 쏟아져, 정신을 가누기도 쉽지 않다. 뉴스따라잡기가 직업인 사람도 힘드는데, 시민들이 느끼는 혼란은 더 자심할 것이다.야당의원에 대한 고소와, 고소인 자격의 출두 조사라는 「김현철씨 의혹의 해법」 역시 이런 혼란의 한가지다. 의원 등 6명을 고소한 김씨에 대해 검찰은 이번주안에 조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지만, 그러한 해결방법은 마치 우수아침에 갑자기 분분했던 춘설처럼 보는사람들을 어지럽게한다.

한보사태의 핵심적 사안으로 지목되어 온 김현철씨 관련 의혹은, 그러잖아도 그를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고조되고 있을 즈음에 돌발한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 사건에 얹히고 묻혔다. 잇달아 일어난 귀순시민 이한영 피습사건에 이르러서는 국면은 완연히 「안보」로 전환되었다. 베이징의 한국 공관에서 망명을 요청하고 있는 황장엽 비서는 지금 세계의 이목을 모은 가운데 현재진행형의 뉴스를 쏟아내는 중이고, 이한영 피습사건의 범인 추적도 국가의 체면을 건 총력수사로 진행중이다.

사건적인 관심과 흥미에 앞서는 배경요소들이 사실은 더욱 큰 뉴스원이 된다. 북한의 붕괴는 과연 임박한 것인가, 귀순시민에 대한 습격은 북한의 남파공작원에 의한 직접적인 보복인가, 남한 권력 깊숙이 자리잡은 고첩의 실체는 어느정도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국난이 따로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화불단행, 우리의 위기는 엎친데 덮쳐 온다.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새로운 과제는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새로운 일에 쫓겨 어제의 일을 잊기 쉽다. 잊어서는 안되는 일을 잊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안보상황은 매우 긴박하고 중요하다.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안보다. 그러나 안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보」는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인식이 필요하다. 안보로 한보를 가리거나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또한번의 비극이다.

한보사태의 본질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에 있다. 안보위기보다 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국민의 불신이다. 정부가 한보사태를 수습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신뢰감을 회복해 준다는 뜻이 된다.

지난 연말의 노동법 등 날치기 처리에 이은 한보사태에서 국민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국민이 몸담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우리 체제에 대해 그 구성원인 국민이 믿음을 잃고 사랑을 잃고 자랑스러움을 잃었다. 이것이 국난의 모습이다. 국민에게 신뢰감을 회복시켜주고 국가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되살려 주는 것이 국난을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그 첫걸음을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하지 않는게 현명할 것 같다. 성역없는 수사는 결국 없었기 때문이다.

사태의 핵심을 어떻게든 비켜 가려는 검찰의 노력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지 않을 것이다. 신뢰의 회복은 그래서 무망하다.

한보사태는 단순한 금융부조리가 아니다. 나라의 모든 제도와 관행이 복합적으로 얽힌 부패의 종합판인데, 이를 드러내고 자르고 처단하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대해 국민이 끝까지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어낼 것인가.

이 어려운 문제를 상징하는 키 워드는 「민심」이다. 민심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이 권력이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기도 하는 것이 물이라고 한다. 배가 권력이라면 물이 민심이다. 빈 마음을 민심앞에 드러내야 한다.<본사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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