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없는 영화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마치 음악이 없는 세상 만큼이나 메마를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은 스크린 밖을 빠져나와 관객들의 가슴에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자연은 마치 정물화처럼 굳어버릴 것이다.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영화 속에서의 음악은 수다스런 대사나 수많은 영상을 대신한다. 그리고 영화에 리듬과 빛깔과 생명을 불어 넣는다. 영화는 음악으로 더욱 살아나고, 음악은 영화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대부」의 주제가는 이젠 영화를 보지 않고 음악만 들어도 사람들에게 그 「불후의 명작」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사랑과 영혼」 「중경삼림」은 잊혀졌던 노래 「Unchained Melody」와 「California Dreaming」을 새삼 최고 인기곡으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음악은 강렬한 연기이자 대사이자 이야기이다. 감독이나 배우 만큼 유명한 영화 음악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면 절로 영화의 감동이 떠오르고 눈물이 나는 영화 10편을 골랐다(제목은 영화명).
▷그랑 블루◁
심연. 푸른 바다 속을 맨몸으로 잠수해 들어가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대결과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바다를 향한 뤽 베송 감독의 동경과 애정고백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돌고래 울음소리인 듯, 바다의 심장박동인 듯 가슴 벅찬 해방감을 전해주는 프랑스 작곡가 에릭 세라의 주제곡들로 더욱 빛난다.
「니키타」 「서브웨이」 「아틀랜티스」 「레옹」으로 이어지면서 늘 뤽 베송과 콤비를 이뤄온 에릭 세라는 자칫 건조하게 들릴 수 있는 신디사이저에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 넣었다. 바다 위를 쏜살같이 질주해 가는 첫 장면과 함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영화의 서곡 「The Big Blue Overture」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록그룹 출신의 뮤지션이 영화음악가로 변신할 때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 버린다.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였던 마크 노플러는 보컬이 배제된 간략한 사운드와 메시지가 담긴 감성있는 멜로디로 그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5번째 작품인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그는 흡사 클래식에 도전하는 것 같은 장중하고 비장한 선율을 이끌어 냈다. 52년 브루클린의 소외된 인생들의 서글픈 일상사에 귀를 기울이듯, 그들의 지친 어깨를 감싸는 영화의 감정곡선을 따라 안배된 음악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중에서도 소년이 창녀 트랄랄라를 떠올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갈 때 흐르는 「A Love Idea」는 어둡고 각박한 현실을 잊게하는 아름다운 곡.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영화음악의 마에스트로.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 최고의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속엔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가 담겨있고, 느낌이 통하고 시정이 물씬 배어 나온다. 물론 400여편에 가까운 그의 영화음악 가운데 한 작품만 따로 떼내기란 어렵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영화음악에 팬플룻이란 악기가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력을 한마디로 말해준다.
브루클린 다리를 배경으로 소년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처리한 장면에 휘몰아치는 「Cockeye’s Song」은 세계적 팬플룻 연주자 게오르그 장피에르와 성악가 에다 델오르소의 스캣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테마곡.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감독이 바라본 미국. 정지된 듯 꿈결처럼 이어지는 흑백화면 속에 뉴욕에 사는 헝가리인들의 일상과 꿈은 공허하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천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낯선 미국의 모습을 뒤쫓고 있는 84년 칸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 「천국보다 낯선」.
영화도 영화지만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 입가에 흥얼거리게 될 만큼 중독돼 버리는 노래가 바로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너에게 주문을 거네)」이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에바의 곁을 늘 주문처럼 떠돌던 바로 그 곡이다. 거친듯 토해내는 보컬과 화장을 지워낸 듯 소박한 영상의 이미지가 절묘하다.
▷중경삼림◁
늘 안마사처럼 검은 선글라스를 끼는 홍콩의 왕 자웨이 감독. 현란한 색채와 카메라 움직임 못지않게 음악을 고르는 안목 역시 탁월하다. 4명의 홍콩 젊은 남녀의 불안한 현재와 미래, 사랑과 희망을 얘기하면서 그는 마마 앤 파파스의 지난 노래 「California Dreaming」을 새삼 국내 최고 인기곡으로 만들었다. 한물 간 마마 앤 파파스는 내한공연까지 했다.
뮤직비디오 같은 이 영화에서 왕정문이 늘 크게 틀어놓고 듣는 이 노래와 그가 직접 부르는 크랜베리스의 「Dreams」는 바로 도피처를 생각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심리를 말해주며 도시의 우울하고 후텁지근한 정서를 반영한다.
▷지옥의 묵시록◁
베트남전을 다루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보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광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 전쟁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연출솜씨는 그의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가 한 음 한 음 풀어낸 음악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맺으면서 시종일관 긴장의 고삐를 조인다.
난민촌 폭격 때 울려 퍼지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가운데 「발퀴레의 비행」은 전쟁광들의 무자비한 집단학살과 맞물려 참혹성을 부추긴다. 헬기의 소음과 정글에 쏟아지는 빗소리에 덧붙여 암울하게 울리는 도어스의 「The End」는 비극적인 전쟁의 종식을 바라는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처절하다.
▷은행나무 침대◁
「바실 폴리도리스와 엔니오 모리코네를 합쳐 놓은 듯하다」(96년 6월 연예종합지 버라이어티지의 평가). 미국 연예잡지가 한국의 영화음악을 논평했다는 자체가 화제이기도 했다. 이동준이 가야금 대금 소금 구음 등 국악과 소프라노 보이스, 오케스트라를 조화시켜 만들었다. 음악은 천년을 건너온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을 더해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계 영화사에 영원히 기억될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맥스 스타이너는 이 작품의 작곡을 위해 3개월간 서너시간 만 자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스펙터클하면서도 아름다운 주제의 선율은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아, 이 곡』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오프닝 음악으로 자주 쓰여졌기 때문. 그 만큼 미국영화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그다드 카페◁
라스베이거스와 LA를 연결하는 사막의 외딴 곳에 서 있는 바그다드 카페. 그곳을 찾은 독일여성 자스민과 여주인 브렌다의 우정이 녹아 있다. 감독 페시 애들런(독일). 그의 작품 「연어알」의 「Barefoot」와 마찬가지로 싱어 송 라이터 밥 텔슨이 만든 주제가 「Calling You」는 건조하고도 메마른 사막에 숨결을 불어 넣으면서 생기있는 표정을 만들어 낸다. 화면을 지배하는 황갈색의 이미지와 묘한 조화를 일으키며 바그다드 카페로 향하는 그 신비로운 여정에 문득 동참하도록 만들어 주는 미술같은 곡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제목처럼, 그 속에 펼쳐지는 목사 아버지를 둔 두 아들의 인생의 아픔과 기쁨과 관조, 몬타나 협곡의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음악도 부드럽다. 마크 아이샴은 이미 뉴 에이지 계열의 음반을 여러 차례 발표한 실력파.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영화 전체를 받쳐주는 음악이 영화를 더욱 기름지게 한다.
(기타 추천작은 「마지막 황제」 「시네마 천국」 「신들러 리스트」 「포레스토 검프」 「사랑의 은하수」 「스타워즈」 「피아노」 「대부」 「샤인」 「안토니아스라인」 「트레인스포팅」 「저수지의 개들」 등).<이대현 기자>이대현>
▲추천한 사람들
권영<영화음악 칼럼니스트>영화음악>
이동준<영화음악 작곡가>영화음악>
배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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